하르빈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나는 2시간의 비행끝에 처음 출발했던 북경으로 다시 돌아왔다. 도착하자마자 전에 나의 중공여행을 위해 애써준 S신부가 어떤 정보를 더 입수했는지 알기위해 난탕대성당으로 달려갔다. S신부와 G신부는 처음 만났을때보다 더 우호적이고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우리는 나의 북경방문 일정에 대해 다시 한번 상세하게 논의했는데 나는 그들로부터 북경에서 유명했던「북당」(North church)、「남당」(South church)을 비롯 세개의 큰 문들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그들은「동화문」(東華門)「동안문」(東安門)「선무문」(宣武門)등 세개의 큰 문 가운데 동화문만이 남아있을 뿐이며 다른 두개의 문은 1950년대에 파괴됐다고 말해주었다.
또한「북당」은 여전히 건재、현재공립학교로 사용되고있다는 사실도 알았으며 아담ㆍ샬신부에 의해 세워진「남당」은 사진을 구할수 있었다. S신부와 G신부는 북당에 가지도 말고 사진도 찍지말라고 충고했다.
그 건물들에 관한 1900년 이전의 서류는 거의 찾을 수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문화혁명 기간 중 너무 많이 파손 됐고 적절한 연구작업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혹시 관청이나 도서관에 가면 그 서류들의 사본을 찾아볼 수 있지않겠는가 제의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그 사본을 찾으려하는 자체가 정부의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면서 반대했다.
서류를 얻기 위해서는 보다 깊이 연구를 해야 할 것 같았고 또한 중국교회와 정부 관리들과의 접촉도 필요할 것 같았다. 그들은 그 일에는 시간이 걸릴것이며 정부관리의 일시적인 기분에 좌우될수 있다고 지적해 주었다.
이번 북경방문에서 나는 무척 안정감을 느꼈다. 그것은 내가 처음 방문했을때보다 더 상세한 일정을 논의할 수 있었고 우호적이고 자유로운 분의기속에서 여유있게 토의를 할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번 방문에서 마태오 리치시대 이후 몇몇 선교사 주교들이 북경에 묻혀있었으나 그 무덤들이 문화혁명 때 산산히 부서졌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었다.
난탕대성당의 F주교는 나에게『중국교회는 매일 매일 혹은 해를 거듭할수록 자유로와지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곳에서 발행되는 South China Daily Post지에서 상해에서는 18개의 성당이 문을 열었다는 내용을 보고『그 이야기가 정확한가』를 물어보았다. G신부는『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래서나는『왜 북경에는 2개의 성당밖에 문을 열지 않았는가』하고 물었다.
G신부는『상해에는 신부가 많기 때문에 그렇다』면서 또한『신자들도 교회가 문을 열기를 요청하고 있기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또『필요하다면 정부는 더 많은 성당이 문을 열도록 허락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신자들을 돌볼 성직자가 있다면…이란 단서를 덧붙였다.
나는 처음 방문때보다 더 상세하게 한국천주교회에 몇가지 기념물을 전해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오랜 시간동안「왜」「어떻게」에 관해 논의했다.
결과는 만족스럽게도 한국천주교회가 중국교회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은 장식판이나 기념물을 준비해도 좋다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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