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르포] 광명 만남의 집을 가다
편히 머물 수 있는 이곳에서 우리 꿈도 자랍니다
1986년 노동자 시설로 시작해 성장
열악한 환경에 처한 아이들에게 쉼터·교육 제공하며 ‘울타리’ 역할
애정결핍·우울증 겪던 아이들 치료 받고 함께 어울리며 ‘변화’
“내일은 더 나을 것”이란 희망 싹터
3월 23일 광명 만남의 집 아이들과 교사들이 손으로 하트를 만들며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미국인 수녀가 뿌린 작은 씨앗이 큰 나무로 자라났다. 특히 어린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 주고 넉넉한 그늘이 되어주는 곳이다. 교구 사회복지회 산하 광명 만남의 집(시설장 임삼례). 그곳에서 부활의 희망과 기쁨을 그 누구보다 기다려온 아이들을 만났다.
■ 아픔 있는 아이들의 편안한 집
“선생님, 배고파요. 밥 주세요!”
3월 23일 광명시 도덕공원로 27 만남의 집 꿈터 지역아동센터. 어디선가 우렁찬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 아이가 오자마자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는 당당하게 주방으로 찾아갔다. 11살, 한창 먹을 나이다. 현재시각 5시, 아직 밥시간이 되기 전이지만 아이는 결국 초코바 하나를 얻어냈다. 웃음꽃 만발이다.
피아노, 영어 수업을 하는 아이들, 삼삼오오 모여 책을 읽거나 놀이를 하는 아이들. 방, 거실, 주방, 직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까지 아이들이 없는 곳이 없다. 아이들에게 만남의 집은 언제든 올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놀 수 있는 편안한 ‘집’이다.
서영(가명)이도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있었다. 사실 서영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였다. 어려서 부모님께 버림받아 엄마아빠 얼굴도 모른 채 할머니 손에 컸다. 가난한 할머니 홀로 아이를 키우는 데엔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애정결핍은 소통능력 저하와 학습부진으로 이어졌고, 그 때문에 왕따를 당했다. 다른 지역아동센터에서도 적응하지 못해 만남의 집에 오게 됐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에도 그동안 사랑받지 못한 상처에 하루에 열 번도 넘게 울곤 했다.
그런 서영이가 이제는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언니노릇도 톡톡히 한다. 만남의 집을 통해 적절한 상담과 치료를 받아 호전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따듯하게 자신을 맞아줄 ‘집’이 있다는 것이 큰 힘이었다. 서영이는 “이곳에 오기 전에는 늘 밖에서 혼자 놀면서 왜 날 받아주는 곳이 없을까하고 생각했다”면서 “만남의 집은 늦게까지 집처럼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서영이만이 아니다. 이곳에 모인 아이들은 대부분 한부모가정, 조손가정, 저소득층 등 경제적·환경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다. 그러다보니 많은 수가 애정결핍,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우울증 등을 겪었고, 아이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기 일쑤였다. 그런 아이들이 만남의 집에서 변화해나갔다.
시설장 임삼례씨가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다.
■ 늘 찾아오는 작은 부활
만남의 집은 초·중등학생을 위한 ‘꿈터 지역아동센터’와 중·고등학생을 위한 ‘차오름 지역아동센터’를 운영, 아이들을 보호하고 교육할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 다양한 체험활동을 제공하고 있다. 밤늦은 시각까지 일해야 하는 부모들을 위해 오후 10시까지 야간보호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덕분에 서영이처럼 왕따를 당하던 아이들이 밝아졌고, 문제행동이 있던 아이들도 자제할 수 있게 됐다. 자살기도를 할 정도로 우울했던 아이는 아픔을 이겨내고 이곳 교사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남기기도 했다. 이곳 교사들에겐 상처받았던 아이들이 보이는 작은 변화 하나하나가 큰 보람이다.
시설장 임삼례(효임골롬바)씨는 “아무래도 이곳에 오는 아이들이 대하기 어렵고 말썽꾸러기도 많아 ‘이 아이 때문에 시설 전체가 문제될 수도 있을 텐데’라는 걱정이 되는 아이를 만나기도 하지만 이 아이들이야말로 우리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아이들”이라면서 “속상해 울 때도 많지만, 변화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힘든 것을 잊는다”고 말했다.
졸업 후에도 자원봉사자로서 매일 만남의 집을 찾아오고 있다는 이혜진(20)씨는 “만남의 집에서 많은 것을 경험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다”면서 “헤매던 내가 머물 수 있는 곳이자 나를 성장하게 해준 곳”이라면서 만남의 집에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 지역공동체의 부활을 위해
사실 만남의 집은 지역아동센터만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1986년 미국 출신의 노은혜 수녀(메리놀수녀회)가 만남의 집을 시작할 때는 노동자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노 수녀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사는 광명의 판자촌 한 구석에 그리스도의 복음 정신에 따른 만남의 공간을 지향하면서 이 ‘만남의 집’을 설립했다.
만남의 집은 지역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역할이 달라졌다. 노동자들을 위한 문화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법률상담, 환경운동, 장애인 봉사, 노숙인 급식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판자촌이 사라지고 주변 환경이 변화하면서 가난한 이들의 자녀들을 위한 보호가 필요해지자 1993년부터는 공부방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노 수녀는 은퇴 후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만남의 집’을 수도회나 본당이 아닌 지역공동체의 손에 넘겼다. 그래서 만남의 집은 지역아동센터의 이름인 것과 동시에 시민단체의 이름이 됐다. 만남의 집은 시민협의회, 푸른광명21, 지역사회복지협의체, 평생학습원, 교육지원청 등과 연대하면서 지역사회의 어려움을, 특히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함께 풀어나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역공동체가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해 나갈 수 있도록 지역공동체와 함께하는 것이다.
1988년부터 만남의 집 자원봉사를 시작해 2006년부터는 시설장을 역임하고 있는 임삼례씨는 “아이들을 만나면서 내일은 더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면서 “만남의 집은 비록 신자는 많지 않지만, 늘 부활이 찾아오는 곳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후원계좌 국민 234301-04-116101 광명 만남의 집
※문의 02-2687-3405 광명 만남의 집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