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1927 vs 청년 2018] 가상대화- "교회 일치·발전과 민족복음화는 변함없는 소명”
창간 당시 신자 비율 0.57%에 일제 검열… 큰 장벽에도 발행 이어가
젊은 평신도들이 시작한 작은 매체서 한국교회 대표 언론으로 성장
세속주의 등 교회 위기 계속될수록 새로운 복음화 꾸준히 모색해야
1927년과 2018년. 서로 다른 시공간을 사는 구정과 민지. 그러나 가톨릭신문을 만드는 청년이라는 점에서 둘은 같습니다. 두 청년이 한 자리에 모인다면 무슨 얘기를 나누게 될까요? 두 청년의 가상대화를 통해 가톨릭신문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 가톨릭신문의 시작, 그 정신
민지 :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정말 영광입니다.
구정 : 하하, 나 또한 영광이오. 천주교회보 창간에 깊이 관여한 다른 동무들이 많은데 이렇게 1927년 청년을 대표해 나를 불러냈다니, 영 민망합니다.
민지 : 선배님 궁금한 것이 참 많습니다. 무엇보다 당시 상황에서 교회 소식을 전하는 매체를 창간하다는 것이 참 어려운 결단이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우리 신문의 시작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구정 : 천주교회보의 시작이라…. 그렇습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대구 가톨릭 청년 활동의 중심이었던 남방천주교청년회 회원들의 의지가 워낙 강했습니다. 조선에 천주교가 전파된 지 100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신자 수는 쉽게 늘지 않았고 오히려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사회주의의 영향력이 강해져 가는 때였지요. 우리는 교회 소식을 전해 교인들을 하나로 모으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매체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발간되던 ‘가톨릭 타임즈’와 ‘가톨릭’(カトリツク)의 존재가 우리 청년들에게 큰 자극이 됐습니다.
민지 : 아하, 그런 시대적 맥락에서 보니 1927년 4월 1일자 창간호에 실린 창간사가 더 깊이 이해됩니다.
구정 : 그 창간사는 윤창두 형님이 쓰셨지…. “본보는 세 가지 요구에 응해 출생하였으니 하나는 교구 내 소식보도요, 둘째는 교회발전에 대한 의견교환이요, 셋째는 교회공동체가 단결하여 함께 걸어가자는 보조일치외다.” 이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민지 : 네, 선배님 정확히 기억하고 계시네요. 선배님들이 남기신 창간사는 오늘날의 가톨릭신문 사시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소식보도, 보조일치, 조국성화가 그것이지요. 교회의 일치와 단결, 교회의 발전과 민족복음화를 위해 뜻을 모았던 창간 당시의 정신은 오늘날까지 가톨릭신문이 변함없이 지켜온 소명이기도 합니다.
■ 가톨릭신문, 과거와 오늘
민지 : 선배님, 말씀하신 것처럼 당시엔 천주교 신자도 많지 않았고 지금처럼 미디어 산업이 발전한 시절도 아니어서 신문 발간을 지속하는 일이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구정 : 그랬지요. 당시 우리 국민 전체의 문맹률은 80%에 달했고, 천주교 신자 수는 10만 명을 넘어서긴 했지만, 전체 인구의 0.57%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 소식을 전하는 신문은 수요가 많지 않아서 발간을 이어나가는 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일제의 검열은 더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또 다른 장벽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어려움도 우리 교회에 매체가 필요하다는 절실함을 누를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교회 소식을 알리고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청년들의 마음이 간절했던 것이지요. 결국 남방천주교청년회 사무실을 빌려 편집실로 사용하고 편집위원들은 모두 무보수로 봉사했습니다.
그래도 종잇값과 인쇄비는 내야 했기에 창간호만 8면으로 발행하고 제2호부터는 4면으로 발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면의 한계와 검열로 더 다양한 소식을 싣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아무래도 남방교회(현재의 대구대교구) 소식과 청년회 활동을 주로 전했지요.
민지 : 그랬군요. 하지만 선배님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91년이 지난 지금, 가톨릭신문은 대구본사와 서울본사 양 본사 체제로 운영되며 전국 곳곳에 지사를 둔 명실공히 전국구 가톨릭 정론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오늘의 가톨릭신문은 한국교회는 물론 해외교회 소식을 폭넓게 전하며 아시아 복음화와 평화의 가치 전파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구정 : 참으로 기쁩니다. 젊은 평신도들이 시작한 작은 매체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매체로 성장했다는 데 큰 보람을 느낍니다.
민지 : 그렇습니다. 선배님. 4면짜리 월간지 천주교회보는 가톨릭신문으로 거듭나 한국교회사를 대변하는 산 증인으로 세상에 진리를 외치는 소명을 다해왔습니다. 교회 소식을 알리는 기본적 책무 외에도 교회의 발전방향을 제시하는 예언자적 역할, 교회공동체가 함께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선구자적 역할을 맡아온 것입니다.
■ 가톨릭신문, 그리고 청년
구정 : 그러고 보면 천주교회보를 만든 것은 교구도 아니고, 부와 명예를 갖춘 유지도 아닌 그저 말하고 싶고 전하고 싶어 가만있을 수 없었던 평신도 청년들이었습니다. 우리 청년들은 일제에 조국을 빼앗기고 변변한 일자리조차 없어 어려운 시절에도 복음화를 위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민지 : 선배님 저희 후배들 또한 청년 그리스도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가톨릭신문’의 시작을 큰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청년들은 고통에 신음합니다. 물론 저희는 선조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제국주의의 횡포나 지독한 가난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습니다. 그러나 물질주의와 성공지상주의는 끝없는 비교와 경쟁으로 청년들의 가슴을 멍들게 했습니다.
구정 : 청년들이 행복하지 않은 나라는 참으로 슬픈 나라입니다. 그러나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 가톨릭 언론인의 역할, 우리 신문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가톨릭 언론은 일반 언론과 달리 교회의 선익, 공동선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을 잊지 마십시오. 누구보다 청년들이 하느님의 섭리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데 앞장서야 합니다.
■ 가톨릭신문,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를 위하여
민지 : 지난 91년 동안 한국교회는 눈부신 양적·질적 성장을 이뤄냈습니다. 우리 교회와 가톨릭신문은 이 역사를 함께해왔습니다. 그러나 청년과 교회는 점점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현세적이고 세속주의적인 세태는 신앙의 위기를 가속화시키고 있습니다.
구정 :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진리는 시대가 변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신문 또한 시대적 상황과 조건들 속에서 새로운 복음화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민지 :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복음화가 필요한 것이군요. 저희들도 새로운 열정과 새로운 방법, 새로운 표현들을 고민해 보겠습니다.
구정 : 옳습니다. 신앙이 흔들리는 시대라는 것은 곧 신앙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한 시대라는 뜻입니다. 서로 사랑하며 평화를 이루는 데 앞장서십시오. 그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정다빈 기자 melani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