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땅 곳곳에는 순교자들의 얼이 살아 숨쉬고 있다. 아직 순교성인을 탄생 시키지 못했고 비록 직접 순교한 순교터가 아닌 연고지라 하더라도 이 조그만 한반도 전역은 순교자들의 발자취와 숨결이 겹겹이 서리고 엉킨 고귀한 터전이기 때문이다.
이미 두차례에 걸쳐 소개한 서울 및 지방의 순교성지 등 성인이 순교한 성지외에도 이땅에는 그 역사적 가치가 확인된 순교지 사적지 유적지는 50여곳을 헤아리고 있고 그 수는 제반 기록자료의 발굴과 함께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무수한 성지가운데도 뜨겁고도 진한 믿음의 향기를 풍성히 담고있는 곳을 간추려 소개、그날 그 순간의 영광을 되살려본다.
「절두산」(서울 마포구 합정동 96~1).「양화진」이 원래 지명이었던 이곳의 이름이 절두산(切頭山)이란 처절한 이름(?)으로 개명된 사실에서부터 순교지로서의 절두산의 위치를 가늠해 볼수있다. 도도히 흐르는 한강을 굽어보며 깍아지른듯 솟아있는 절벽위로 자리한「순교 기념박물관」은 절두산의 상징처럼 묵묵히 영광의 땅을 지키고 있다.
1866년 봄 병인대박해로 처형당한 순교자 가운데 9명의 프랑스인 성직자들에 대한 책임을 묻기위해 프랑스 군함이 당시 서울의 문턱인 양화진에 나타남으로써 피어린 절두산의 역사는 시작됐다. 이에 노한 대원군이 그들을 끌어들인 천주학쟁이의 피로 더렵혀진 땅을 씻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다시 박해의 칼날을 세웠고 이곳에서는 수천을 헤아리는 신자들이 참수되어 한강으로 던져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지가 그렇듯 기록자료의 부족으로 현재 40명의 순교자만이 이름이 확인된 이곳은 1966년 병인박해 1백주년을 기념、기념관이 세워졌으며 1968년 병인순교자 24위 시복을 기해 지하성당에 순교복자 유해안치소를 설치 했는데 현재는 27명의 순교성인유해가 안치돼있다.
순교자 유물 유품 등 모두 2천여점을 보유、관리하고 있는 한국 최대 순교기념관이지만 현재의 시설로는 일부밖에 전시할 수 없는 안타까움속에 절두산은 순교선열들의 피와 땀이 배여있는 유품들을 소중히 관리、후대에 물려줄수 있도록 전시관 마련에 총력을 모으고있다.
지금도 땅을 파면 순교자들의 유해가 발견돼 우리의 가슴을 메이게 하는「해미」순교성지. 충남 서산군 해미면 읍내리에 자리한 해미는 1801년 신유박해때부터 병인박해까지 60년동안 1천여명의 순교자가 처형된 곳으로(실제로는 3천여명을 넘는것으로 추산)그 처형 방법 또한 극히 혹독했던 피의 현장이다.
해미 천변에 건립된(1975년)순교탑 자리는 순교자들이 생매장된 바로 그자리. 한꺼번에 많은 신자들을 처형하기위해 큰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 했다는 그 곳에서 순교자들은 앞다투어 구덩이로 뛰어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최근 해미는 외적인 단장에앞서 역사적의미를 찾아 본받도록 한다는 정신에따라 교구 차원에서 단계적인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해미와 함께 충남의 대표적성지로 손꼽히는「솔뫼」(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는 한국성직자들의 수호자이며 대표성인인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이다. 내포지방의 사도 이존창(단원)으로부터 천주학을 배운 김대건 신부 일가는 바로 그 때문에 몰락、현세에서는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으나 한가계에서 4명의 순교자를 배출하는 영광을 안았다.
1977년 김대건 신부 동상건립과 담장공사에 이어 8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성역화작업은 현재 단계적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이미 완공된 피정의 집은 순례자들이 쉬며 기도할수 있는 기도의 집으로 폭 넓게 활용되고 있다.
솔뫼가 김대건신부의 탄생지라면「미리내」(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미산리)는 전교지이자 유해가 안치된 성역이다.
김대건 신부의 발자취가 깊게 서린 미리내는 수원교구가 일찍부터 개발을 서둘러 현재 23만평 대지위에 성당ㆍ경당ㆍ피정의 집을 고루 갖춘 모습으로 순례자들을 맞고있다.
고 양기섭 신부의 무서운 패기로 개발에 박차를 가했던「배론」(충북 제원군 봉양면 구학2리)은 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자들의 은거처로 그 역사가 비롯됐으며 황사영이 백서를 쓴 역사의 땅이자 두번째 한국인사제 최양업 신부의 묘가 있는 성소의 땅이다.
그러나 배론은 한국신학교의 요람지인 성요셉신학당이 있던 교육의 터전으로 더많이 알려져 있으며 성 장주기 남종삼의 드높은 신덕이 함께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앞서 지적한대로 좁은 지면에 그 많은 성지、유적지、사적지들을 모두 수록할 수 없는 안타까움속에 각 지역별로 결코 잊을 수 없는 성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명례방 모임으로 순교한 김범우를 기억케하는「명동」을 비롯、서울지역에는「시구문」「삼성산」「와고개」 등이 있고 성김안또니오 등 그 일가의 무덤이 있는「구산」을 필두로 경기도 일원에는「천진암」「남한산성」「죽산」 등 여러 곳이 개발돼있다. 충청도지방은「연풍」「다락골 줄무덤」「황쇄바위」「배티」「여우목」 등을 찾아볼 수 있으며 전라도는「천호공소」「중바위」「여산」을、경상도지방은「신나무골」「한티」「오륜대」를 꼽을 수가 있다.(계속)
특집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