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가 되려고 결심하고 예비하는 처녀에게 한 청년이 다가와서,『우리, 작끄 마리땡(Jacques Maritain)과 라이싸(Raissa)처럼 살아갑시다』하고 프로포즈를 하면 신선한 충격이 될 수 있을까?
수녀가 되려고 결심한 동안에는 남자들이 모두 헌 짚세기로 보이고,『어떤 짚세기에게 내 마음과 몸을 바치랴?』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적어도「작끄와 라이싸처럼」이라고 할 때는 헌 짚세기로 던져버리기엔 좀 미안한 감이 들 것이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빠리의 소르본느대학 캠프스 내에서 서로 알게 된 마리땡과 라이싸는 두 사람이 같은 고민, 같은 목적을 자기고 있다는 걸 발견하였다. 라이싸는 식물학, 지질학, 생리학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이 연구를 통하여 우주의 근원과 본질, 종말을 밝히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마리땡은 철학과 생물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함께 생의 의의, 인간의 운명, 사회의 정의와 부정 등, 모든 것을 심사숙고하였다. 또한 서로 자신에 대해서 털어놓을 수 있었으며 서로의 고민을 말할 수 있었다. 그 후 진리를 찾아 달음박질하는 두 청춘은 한 목적을 향하여 평생을 바쳐갈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따라서 마리땡의 생애를 살펴볼 때, 항상 그의 그림자 같이 인생 여로를 함께 걸어가는 라이싸를 발견하게 된다.
그 당시 소르본느대학의 교수들은 과학만능주의가 아니면 지적인 회의주의와 도덕적인 허무주의에 빠져 있었다. 아무런 지식도 영구적인 구원과 절대적인 갈망에 굶주린 이들 모두 영혼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지 못하였다.
그 무렵, 우연히 베르그송(Bergson) 강의를 듣게 되었는데, 당시 물질주의자의 괴변을 부인하고, 인간 자신 안에 실재를 인식하며 절대자에게 닿을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이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20세 된 이 두사람은 성심에 이르는 영원한 층계를 올라가는 어린이에 불과하였다. 그들은 현대문화의 유일한 산물인 비탄을 가슴 속 깊이 안고 있었다. 일종의 처참한 실망에 빠져 있었다. 무엇 때문에 진리를 갈망하는가를 알지 못했으며, 또한 왜 절대자의 진리 없이는 하루도 삶을 유지할 수 없는지를 진정으로 이행하지 못하였다. 일종의 심미적 도덕이 단순히 그들의 삶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의 유일한 결론은 자살이었다. 실제로 여러 번 자살의 유혹을 받았다. 그러나 죽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었다.
1904년 드디어 그들이 결혼한 후에,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며 평론가인 레옹 블로아(Leon Bloy)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두 사람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레옹 블로아와 그의 저서들을 접견할수록 가톨릭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깨닫게 되고, 기독교적인 우애, 하느님의 사랑을 지닌 영혼만이 가질 수 있는 일종의 감동과 전율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들은 성성과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영세를 하기까지는 많은 난관이 있었다. 전통적인 그 땅의 교회는 권세 있는 유한계급과 위선자군의 성곽 같이 보였으며, 또한 교회에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학문과 철학을 포기해야만 될 것 같이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교회에 대한 몰이해와 몰상식을 수정하게 되고, 가톨릭 교회야말로 모든 가치의 종합된 세계이며,『교회는 진리의 결합처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1906년 드디어 길고도 암담한 미로를 방황하던 두 영혼은 가톨릭 교회의 문을 두드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더욱 안정된 환경과 평화스런 심경으로 마리땡의 연구생활은 계속되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철학과 천사적 박사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중세철학을 연구하고 나서, 이제 베르그송의 철학을 뛰어넘어 구원의 철학에로 일로 매진하였다.
라이싸가 병약하여 마리땡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녀는 그에게 많은 영감과 지적인 자극을 주었다. 그리고 서로의 영성을 북돋아 주었다.
세상의 부부들 중에는 남편이 아내를 살리고 아내가 남편을 살리며, 서로 보완하고 북돋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서로 깎아내리고 파괴시키는 부부도 있다.
마리땡과 라이싸는 참으로 이상적이고 모범적인 가톨릭 신자 부부로서 대표적인 경우라고 하겠다.
마리땡과 라이싸도 부부 싸움을 한 적이 있을까? 그리고 남들처럼 권태기를 겪었을까? 기록에는 그런 사실이 드러나 있지 않지만, 그들도 인간인 이상 그런 위기를 겪었음직하다. 지혜로운 라이싸는 그러한 위기를 쉽게 극복하기 위하여 먼저 많이 기도하고, 자기 의사를 굽히고, 일요일엔 별미를 요리하여 작끄에게 권하며 애교를 떨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마리땡이 한 눈을 팔았다거나 라이싸가 딴 마음을 먹은 적이 있었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너무나 신심이 깊고 경건한 사람들인데다 두 사람이 워낙 깊은 사랑을 지녔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