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초부터 서울 도심과 혜화동 대학로에는 접시 위에 올라 앉아있는 수녀의 모습이 그려진 포스터들이 곳곳에 나붙었다. 연극「병사와 수녀」공연을 알리는 이 포스터에는 칼과 포크를 들고 있는 한 병사(김형곤 분)와 접시 위에 비스듬히 앉아있는 수녀(박현숙 분)의 모습이 선정적으로 묘사돼 있고, 게다가 포스터 좌측에는 성적인 연상작용을 의도한 선정적인 문구가 큼직막하게 적혀있어 연극의 내용을 한눈에 알 수 있게 돼있다.
포스터의 목적이 상품(연극)의 선전을 위한 것이라고 할때 이 포스터는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 수녀와 성을 연결시켜 선정적으로 표현한 포스터는 신자들에게는 혐오감을, 비신자들에게는 호기심을 발동시켜 개막공연 당일 공연장은 평일임에도 거의 빈 좌석이 없었다.
포스터에서 암시된 선정성과 종교적 요소에 대한 무책임한 자세는 공연 내용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1시간 30분 남짓한 공연은 주로 성적 욕구를 발산하고자 하는 병사와 수도자의 신분으로 이를 용납할 수 없는 수녀의 실갱이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이런 줄거리에서 희극적 요소를 극대화시켜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원래 이 작품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작가 찰스 쇼오의 소설「그대여 순백의 영혼이여」로서『「충격적인 소재, 감동적인 주제, 눈물겨운 내용」으로 격찬』 받았다고 극단 측은 말했다. 그 말대로 연극의 주제는 진지한 것이고 줄거리 역시 수녀의 신앙과 사랑에 병사의 맹목적인 본능이 감화된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이 연극의 일차적인 문제는 바로 이런 주제가 소위「섹스 코미디물」의 대상이 됐다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작이 갖는 진지한 주제는, 신앙이나 인간심리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무인도의 남녀라는 상황의 희극적 요소만을 따서 각색함으로써 전혀 진지한 것이 아닌 것으로 됐고 그런 의미에서 이 연극이 찰스 쇼오의 소설과는 아무런 내적 관련성이 없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듯하다.
무엇보다도 섹스 코미디물「병사와 수녀」는 가톨릭에서의 수도자의 의미와 위치, 신앙과 삶에 대해 전혀 아무런 지식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원작에서 갖는 수녀라는 인물의 의미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았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이와 관련해 극단 측은「연극에서 수녀라는 인물은 본능적인 감정에 사로잡힌 인간의 상징으로 병사를 설정했듯이 성적 관계를 용납해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상징적인 존재일 뿐 종교적인 요소와 관련해 생각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수녀가 하는 모든 행동의 동기는 바로 종교적 이유에 바탕을 두고 있고 병사가 끝내 감화를 받는 이유 역시 수녀의 그런 신앙에 근거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그리고 수녀가 가톨릭의 수도자로서 갖는 의미가 크다는 점에서 이 연극의 수녀에 대한 무책임한 묘사의 부정적 영향은 심각하게 지적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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