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가 토착화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으나, 그 필요성에 비해 아직 교회 당국자들이나 신자들 스스로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어 이에 대한 관심이 촉구되고 있다. 이에 지난 2월 20일부터 26일까지 독일 아헨에서 개최된 토착화 국제 학술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던 한국 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 심상태 신부의「아헨 토착화 국제학회 참가기」를 연재한다.「세계 교회 토착화의 일반적 현황」을 시작으로「탄자니아」「파나마-인디오스의 토착화 주체의식」「스리랑카-아시아로부터의 배움과정으로서의 토착화」, 그리고 이에 비추어「한국 교회의 토착화를 위한 의미」에 대해 소개한다.
필자는 지난 2월 20일부터 26일까지 독일 아헨(Aachen)에서 개최된 토착화 국제 학술회의에 참가했다. 교황청 설립 독일 전교회「미씨오」(Mis-sio) 부설 연구소인「미씨오 선교학 연구소」가「그리스도 신앙과 문화, 토착화 과정의 경과와 전망」의 주제로 국제 학술회의를 주최하면서 세계 5대주를 총망라한 토착화 전문 연구기관의 대표들을 초청하는 중에 한국에서는 토착화 전문 연구 기관인「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를 대표하여 필자를 초청한 것이다.
이번 아헨 국제학회는 전 세계에서 27개국의 대표 50여명이 참가했다. 이 학회는 소수이기는 하지만 개신교 연구기관의 대표자들과 이슬람교 학자들을 참가토록 함으로써 범 종교적 성격을 띄기도 했다. 그리고 이 회의에는 자신들의 고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인물들과 토착화 분야에서 일가견 있는 전문가들이 대거 참가했다.
아헨에 소재하는 한 호텔에서 개최된 학술회의는 참가자들의 회의장 도착 당일인 20일 저녁 8시에 개회식 행사와 함께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27개국 대표단 참석
주최기관인「미씨오」회장 카우트 몬시뇰은 환영사를 통해 2천년대를 불과 수 년 앞둔 전환기적 시점에서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정지작업의 일환으로 개최되는 이번 토착화 국제학회의 중요성에 관해 언급하면서 이번의 모임이「시작의 시작」의 성격을 지님을 강조하고 참석자들이 대표하는 인종과 국가, 그리고 문화의 다원성 안에서도 복음적 조화와 일치가 실제로 드러나게 되기를 희망했다.
이번 회의는 세계 교회 안에서 토착화 작업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진행된 지역 국가들의 진척 현황과 신학적 입장에 관해 21일부터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 등의 순서로 대륙별 주제 발표를 듣고 참가자들이 5개 그룹으로 나눠 매일 두 차례에 걸쳐 발표된 내용에 관한 논평과 아울러 토착화와 관련된 여러 주제들, 이를테면 종교간 대화, 서방 세속문화와의 관계 등의 주제와 관련시켜 토의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매일 한 차례 전체 회합에서 그룹별로 논의된 내용의 요약 발표와 자유로운 토론 형식으로 회의가 진행됐다.
◆다섯 개 그룹 나눠 토의
회의 마지막 날인 25일에는 앞으로의 공동 연구를 위한 구체적 방안에 관한 논의를 한 결과 범 세계적 공동 연구기관의 성격을 지닌「국제 토착화 연구 그룹」을 공식적으로 결성하기로 거의 만장일치의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래서「미씨오 선교연구소」가 사무처 역할을 수행하면서 앞으로 3년마다 공동 관심사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논의하는 학술회의를 개최함으로써 토착화 작업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척시키려는 노력이 공동으로 이루어지는 도정이 열린 것이다.
유럽 교회의 토착화 상황에 관한「미씨오 선교연구소」소장 베르취 신부와 동 연구소 직원 에버스 박사의 발표 내용은 우리 한국 교회의 기본 자세와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그들은 중세기 이래 그리스도교 대륙이었던 유럽이 오늘날 세례자 수 감소와 냉담자 및 교회 탈퇴자 수 증가로 말미암아 피 선교 대륙으로 변모하였음을 기정 사실화하면서 현실과 미래 세계 속에서 유럽 교회가 택해야 할 토착화 진로를 나름대로 제시하고자 시도했다.
그들은 일체의 실재를 2원론적 입장에서 분리시켜 파악해온 전통적 서구 그리스도교의 실재관의 한계가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다원화 상황과 생태계 위기 상황에 직면해서 더 이상 간과할 수 없이 드러났음을 시인했다.
◆자국 토착화 현황 발표
그리고 그들은 인간이 포함된 자연 속에서의 하느님의 현존을 신봉하는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그리고 오세아니아의 고등종교 내지 토착종교로부터 진리를 배우고 받아들임으로써 이 시대에 요청되는 새로운 토착화를 이룩하려는 자세를 피력했다.
유럽 교회 안에서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는 개인이나 기관들이 아시아를 위시한 다른 문화권 종교들로부터 배우려는 자세를 공공연히 피력하는 현 시점에서도 여전히 서구 교회를 배우고 모방하는 데 급급한 한국 교회의 일반적 분위기가 부끄럽고 안타깝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인도와 스리랑카, 탄자니아와 나이지리아, 태평양의 피지와 오스트레일리아, 파나마와 아르헨티나 등의 국가 대표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 진행되는 자국에서의 토착화 진척 현황과 신학적 입장에 관한 발표를 했다.
이들 나라들에서는 주교회의 차원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 천명되는 교회의 가르침과 지침에 따라 1970년대부터 토착화 작업을 적극 추진하여오고 있다는 사실이 필자에게는 경이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필자를 더욱 놀라게 한 일은 교회 지도층에서까지 추진되는 토착화 운동과 출발점과 성격을 달리하는 토착화 작업이 남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기층 민중들에게서 거세게 일면서 토착화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둘러싸고 긴장관계가 조성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교회 방향타 제시
아직까지 토착화의 필요성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 있는 한국 교회에서는 일반 지도자들과 신자들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소위 선도적이라는 신학자들 사이에서조차 전혀 느껴지지 않는 주체의식이 높게 표출되고 과감한 실험이 결연한 자세로 착수되는 나라들의 토착화 현황을 접하면서 충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학술회의는 한국 교회가 세계 교회의 토착화 차원에서는「낙도」와 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도록 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필자는 이번 학술회의에서 발표된 지역별 사례들 중에서 한국 교회가 앞으로 토착화 작업을 수행하면서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내용을 지닌 아프리카의 탄자니아, 라틴 아메리카의 파나마, 그리고 남아시아의 스리랑카에서 진행되는 토착화 실상을 간략하게라도 소개하고자 한다. 끝으로 이번 학술회의가 한국 교회의 토착화를 위해 시사하는 의미를 간략하게 논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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