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에 계속되는 6~12장은 「임마누엘의 책」이라고 부를 만큼 이사야서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기도하다. 이 단락의 서장으로 묘사된 6장은 청년 이사야가 성전에서 야훼의 장엄한 현시를 처음뵙고 그 경이로움에 전률하면서 소명받는 부분이다. 왕의 사자로서 파견되는 소명형식을 살펴보면 옥좌에 앉은 임금으로 나타나신 하느님의 위엄과 거룩하심을 최상급으로 나타태는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6, 3)라는 스랍(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불타고 있는자란 의미로 천상에 하느님을 모시는 천사 가운데 하나)들의 읊조림에 이어 예언자는 자신과 동포들의 부당함을 뼈저리게 체험하면서 『만군의 야훼를 눈으로 직접 뵙다니 이제 죽었구나』(6, 5)한다.
야훼의 거룩함을 체험한 이 신앙고백은 하느님은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의 하느님이심을 드러내는 것이며 하느님이 이 세상에서 활동하시지만 이 세상에 갇혀있는 분이 아니면 인간의 목적이나 이해에 따라 통제되거나 제어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는 의미다. 따라서 인간의 보존은 전적으로 그분께 달렸다는 뜻을 내포하기도 한다.
이사야가 기절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천상의 스랍들로부터 불로 입술을 정화받는다(6, 6~7).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대변하려면 먼저 정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암시한 것이다. 이어서 하늘의 어전회의 광경을 엿 볼 수 있는데 『누구를 보낼까?』하는 지존하신 분의 물음에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주십시오』하는 자원속에 그 소명이 얼마나 암울한 시기를 지나야 하는지를 야훼의 말씀에서 감지하게 한다(6, 9~12). 멸망을 선언하는 속에는 그래도 한 줄기의 빛『이렇듯 찍혀도 그루터기는 남을 것인데 그 그루터기가 곧 씨다』 (13절)라는 말씀으로 하느님이 자기 민족들안에 함께 하리라는 확신을 잃지 않고 있다.
이것은 남은 자 사상, 즉 죄의 댓가로 심판을 모면할수 없겠지만 결코 모두가 멸망한는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어여삐 여겨심을 받은 소수의 사람들이 반드시 돌아올 것이며 이 무리 속에 먼 옛적 다윗가문에 약속하신 메시아 탄생이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다. 이 임마누엘 신탁은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대망에 찬 예언절이다.
7~8장은 예언자가 아하즈왕과 대면하는 장면으로 그 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깔고서 메시아에 대한 예언으로 이끌어 최절정에 달하고있다. 유다는 시리아와 사마리아의 연합군에 몰려 왕과 백성들의 마음이 바람에 휩쓸린 수풀처럼 흔들리고있을 때 당황한 유다의 아하즈왕은 앗시리아에게 조공을 바치고 원군을 청하고자 한다. 이때 대예언자 이사야가 나타나 『너희가 굳게 믿지않으면 결코 굳건히 서지 못하리라』(7 , 9)하면서 야훼만이 진정한 보호자이시며 동맹군이라는 신앙을 일깨운다. 아하즈의 징표 요구에 예언자는 저 유명한 「동정 녀잉태」란 전대미문의 예언을 하여 무한한 능력자이신 야훼의 이스라엘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증명한다. 이 예언절은 여러가지로 해석되고 있으나 예언자 자신도 모르는 동정녀의 잉태를 예언하여 임마누엘 신탁안에 주 예수님의 탄생을 이미 여기서 예보하고 있다. 이 말씀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확약으로 모든 믿는자들의 마음안에 격려와 대망을 안겨주고 있다.
이런 희망적인 예언속에서도 불신앙의 표상처럼 등장하는 유다의 왕 아하즈는 앗시리아의 역겨운 풍속을 답습하여 끝내는 자기 아들마저 불살라 제물로 바치는(역대하28, 3) 만행을 저지른다. 그렇지만 무능한 우상이 돌보아 줄 수 없는 자명한 사실을 증언하듯 앗시리아의 침공을 모면하지 못한다. (7, 18~25).
그러나 이사야 자신의 아들이 하나의 표징이 되어 이스라엘안에 하느님이 함께 하신다는 구원의 희망이 이어진다 (8).
12장은 이 단락의 결론으로 감사의 시편과 찬미가로 이루어져있다.
이렇듯 예언자의 외침속에는 삶안에서 암영을 드리운 답답함이 있을지라도 저 임마누엘 신탁은 대망을 던져준다. 왜냐하면 당파싸움을 방불케 하는 정치인의 세계와 끊임없는 데모 소동、 그리고 외채로 허덕이는 경제난의 소용돌이도 부정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모든 것을 불허하는 악의 세력이 물러갈 때 그리고 조국을 진정으로 아끼는 남은자들 안에서 하느님의 반드시 의식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예수님으로 도래된 메시아 나라의 승리는 자명하지 않은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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