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역사를 지닌 종교는 모두「성지」(聖地)를 갖고있다.
각기 그들의 종교를 위해 신적(神的) 현실이 나타난 장소를 다른 속된 장소와 분리시켜 성지로 정하고 순례자들을 위해 예비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리스도교인들은 하느님의 계시가 특별히 나타난「팔레스티나」를 항상 동경하고 순례하고자 했다.
그들은 하느님의 계시가 그리스도를 통해 결정적으로 드러난 계시의 원천을 확인하고 그들의 신앙을 강화하려했으며 순례자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엄밀한 의미에서 성지란「팔레스티나」를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예수의 길을 따랐던 성인 성녀들과 관련된 지역들을 거룩한 곳으로 생각하고 성지로 가꾸게 되었다.
1백여년동안 계속된 박해로 이땅 곳곳은 신앙 선조들의 피와 땀으로 얼룩졌다. 모진 박해에 쪼기던 발자국과 피흘려 신앙을 증거한 고귀한 얼이 새겨져있는 우리교회는 바로 순교선열들의 발자취와 얼을 바탕으로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소위 한국교회의 성지로 불리는 순교지 및 제반 사적지기념지의 개발은 모진 박해가 끝나고 종교의 자유를 맞으면서 비롯됐다고 볼 수있다. 특히 기해ㆍ병오ㆍ병인박해 순교자들의 시복수속이 진행됨에 따라 19세기 말엽부터 시복대상자들의 유해를 확인하고. 유해를 발굴、종현성당(명동)으로 옮기는 작업이 구체적으로 시작될 수 있었다.
순교기념지 개발은 해방이전까지는 주로 순교자들의 무덤을 확인하고 그 지역을 가꾸는것으로 집중되었고 순교자들의 현장인 순교지 자체를 확보하고 가꾸는 작업은 해방 이후 비로소 시작됐다.
1946년 김대건 신부 순교 1백주년을 맞아 설립된「한국천주교회 순교자 현양위원회」는 첫 사업으로 새남터 순교지를 매입、순교기념탑을 건립한데 이어 절두산을 매입하는 등 순교지 매입과 성역화 사업의 선구적 역할을 담당했다. 절두산의 경우 병인순교 1백주년을 맞은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기념성당과 기념관이 건립돼 순교지로서는 제일 먼저 그 위용을 갖추었다고 말할수 있다.
이와 함께 지방에서도 전주「숲정이」、보령「갈매못」、「해미」등등이 순교터로 매입 돼 성역화 작업이 전개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성지개발은 1970년대들어 본격적으로 활발히 이어졌는데 발생지ㆍ잡힌곳ㆍ순교지 등 순교자들과 관련된 곳을 통틀어 성지로 지칭、개발한 것이 한국교회 성지개발의 특징이었다.
물론 성지에 대한 인식부족과 정확한 사료ㆍ고증의 미비로 그만큼 개발이 늦어지고 있느 곳도 있지만 많은 성지들은 해당교구 본당을 중심으로 꾸준히 힘겹게 개발을 지속、최근에는 순례행렬이 손쉽게 순교지를 찾을 수 있을 만큼 모습을 갖추고 있다.
많은 성지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그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는 이 시점、대부분의 교회사가들은 현재 우리교회가 추진하고있는 성지개발 방법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하는 의문을 제기하고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성지들이 한꺼번에 개발이 추진된다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고통을 받고 있을 뿐만아니라 성지별로 구체화되고 있는 개발의 현실도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성지개발에 앞서 성지에 대한 개념 정립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다시말해 현재 일괄적으로 성지로 불리고있는 모든 성지를 순교지 순교자묘소 탄생지 주거지 유적지 등으로 구분지어 그 성격에 맞도록 개발해야 한다는 것.
한국 교회사연구소 소장 최석우신부는『성지는 하느님의 계시가 직접 나타난 팔레스티나의 고유한 별칭이므로 다른 지방에 적용될 수 없기 때문에 소위 한국의 성지들은 성적(聖蹟)지ㆍ사적지 등으로 불려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신부는『팔레스티나 안에 있는 예수님과 관련된 지역들도 팔레스티나와 같은 의미의 성지가 아닌 성적으로 지적되고 있다』고 강조『한국의 성지들도 명칭을 구분、정확히 불러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원순 교수(서울대)도『최근 전국에 걸쳐있는 순교지 기념지들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나 아직도 자세한 고증을 바탕으로 현양을 위한 성지확보와 보호조치의 손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곳도 많다』고 지적하고『교회가 모든 순교지、기념지들을 일시에 개발하지 못한다면 단계적으로 현양사업을 펴나갈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순례를 통해 아직도 많은 성지들이 일시적이고 단편적으로 개발돼 재정적인 어려움과 함께 노력 또한 크게 요청되고 있음을 목격한다는 김수창 신부(명동주임)는『성지개발은 그 성지의 역사적 원형을 보존하는 가운데 사제 및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장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순교자들의 발자취가 새겨져있고 지순한 신앙이 죽음으로 열매를 맺은 순교터ㆍ사적지들을 개발 보존해야 한다는 중요성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땅의 제반 성지들이 서로 긴밀한 유대와 협력체제를 이룬 종합 계획안에서 균형있게 개발되고 보존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과 아울러 아직 순교지 및 기념지도 확보하지 못했거나 학인하지 못한 곳에 대한 지속적인 노력도 함께 이어져야 한다는 뜻있는 이들의 소박한 바람으로 드러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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