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건설 저지해 우리 고장 지키자」,「주민을 우롱하는 한전은 각성하라」,「4월 14일은 핵 종식의 날」.
14일 오후 2시 강원도 삼척시 정라항 동양 부두에 모인 삼척시 근민 1천5백여 명은 핵 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는 각종 구호가 적힌 1백여 개의 깃발과 피켓을 농악대 리듬에 맞춰 흔들면서 목청껏 구호를 외쳤다.
방한 중인 세계적인 환경단체 그린피스와 환경운동연합이 공동으로 주최한「삼척 핵 발전소 건설 계획 백지화 촉구 결의대회」인 이날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원자력의 위험성을 알리고 원전 추가 건설 계획의 백지화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시위는 18일 고리와 19일 영광에서도 수많은 지역 주민들과 환경운동단체들이 모인 가운데 벌어졌고 특히 오는 8월 1일 핵연료 장전을 앞두고 격렬한 저지운동을 벌이고 있는 영광에서는 가톨릭 측에서도 대거 참여 반핵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한전 등 원자력 관련 기관과 단체는 환경운동단체와 핵시설 설치 지역주민들의 이런 반핵 시위에 맞서、비상 체제를 갖추고 4월을「원자력 사업 진흥의 달」로 정해 원전의 필요성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에 나서는 등 핵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열기를 띠고 있다.
◆핵 발전소와 반핵운동
1978년 경남 고리에 우리나라 최초의 핵 발전소가 세워진 이래 1993년 현재 우리나라에는 경남 고리(4기)、경북 월성(1기)、울진(2기)、전남 영광(2기)에 총 9기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에 있다. 그리고 영과(3、4호기)、울진(3、4호기)、월성(2호기) 등 5기가 추가 건설되고 있고 특히 영광 핵 발전소는 오는 8월 1일부터 핵연료를 장전하고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91년 7월 동력자원부는 장기 전력 수급 계획 발표시 2006년까지 18기、2030년까지 50기의 핵 발전소를 추가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계획대로 건설하게 되면 핵 발전소의 발전 비중은 90년의 49.1%에서 54.5%로、설비 용량은 36.2%에서 39.6%로 높아져 핵 발전소 수로는 세계 4위、인구 비례로는 세계 1위의 핵 발전소 보유국이 된다.
78년 4월 고리 핵 발전소 1호기가 가동될 때만 해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원자력이 인간 생명에 대한 최악의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 후 87년 6월 전남 영광 지역 주민들의 어업 피해 보상 투쟁을 시작으로 핵 발전소의 위험에 대한 찬반 논쟁은 지금까지 격렬하게 지속됐다.
88년 환경운동단체들의 핵 발전소를 첫 방문과 그해 10월 고리 핵발전소 방사선 관련 작업자의 인파선암에 의한 사망、월성 핵 발전소의 중수 누출 사건、고리 핵 폐기물 불법 매립 사건 등은 핵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89년 핵문제는 본격적으로 사회화되고 지역 주민들이 조직적으로 반핵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 해에 결성된「전국핵발전소추방운동본부」와「핵발전소 11、12호기 건설 반대 1백만인 서명운동본부」는 비록 11、12호기 원전 건설을 저지하지는 못했으나 핵문제를 사회적 이슈화하는 데 크게 성공했다. 조직화된 89년 반핵운동은 90년 안면도 핵 폐기물 처분장 건설 반대운동에서 그 절정을 이뤘고 격렬한 반대운동 끝에 핵 폐기장 설치 계획을 전면 보류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최근에는 전남 영광 핵 발전소 가동을 앞두고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영광 천주교회를 비롯、원불교 영광교당、영광농민회、영광 제 사회운동단체들이 함께 참여해 3、4호기 핵 연료 장전 저지와 5、6호기 건설 계획 철폐를 위한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핵 안정성 논쟁
핵 발전소 추진의 찬성에 대한 근거는 먼저 에너지 자원의 제한성과 에너지 사용량의 급속한 증가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에너지 부존 자원이 빈약해 에너지 수입 의존도를 줄이고 환경문제와 관련해 화석 연료를 대신하는 대체 에너지원의 개발과 확보가 시급한데 그 최선의 방법이 원자력 발전이라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경제성이 강조되는데 이는 화석 연료의 한계성과 대체에너지 개발의 어려움을 들어 원자력 발전은 보다 싼 가격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온난화의 주 원인인 이산화탄소 방출량 감소를 위해서도 원자력 발전은 필수적이라는 것이 핵 발전소 찬성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핵 발전 문제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안정성과 폐기물 처리문제이다. 안정성 문제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의문에 부쳐진 지 오래이다. 안전한 무한 에너지원으로서의 핵 발전의 미래는 79년 미국 드리마일과 86년 구 소련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핵 발전소 폭발사건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특히 준공 2년 만에 발생한 체르노빌 사고는 25만의 인구가 대대로 살아온 사방 9천1백km을 방사능으로 오염시켜 수십 년이 지나도록 광범위한 후유증을 여전히 드러내고 있어 최악의 핵 사고로 기록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크고 작은 핵 발전소 사고가 이어져왔다. 1990년「원자력 발전 백서」에 따르면 78년부터 89년까지 사고에 의한 핵 발전소의 불시 발전 정지 건수는 모두 1백98회로 나타나는데 이 중 84년과 88년 두 차례에 걸쳐 발생한 경북 월성 원전의 중수 누출 사고는 조금만 지체했더라도 미국 드리마일 발전소와 같은 심각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것이었다.
돌발적인 사고 외에도 핵 발전소의 존재 자체로 인해 발생하는 핵 폐기물 처리 문제는 원자력 발전의 가장 큰 난제 중 하나이다. 93년 현재 국내에서 연간 발생하는 핵 폐기물은 고준위 폐기물인 사용 후 핵연료가 2백20t、중ㆍ저준위 폐기물이 약 6천2백 드럼씩 발생、각 발전소 부지 내에 보관하는 데 이는 2년이면 포화상태가 되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90년 안면도 핵 폐기물 처분장 건설 계획과 관련해 이 지역 주민들이 벌인 반대운동은 정부의 밀실 행정과 갈팡질팡하는 핵 정책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생명 존중의 핵 정책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90년 1월 1일 평화의 날 메시지에서 환경문제의 도덕적 성격을 규명하고 생명의 존중、특히 인간 존엄성의 존중이 선행돼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오늘날 생태계 위기의 일부 요인들은 그 도덕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첫째 요인이 과학기술 발전의 무차별 적용입니다 …생명의 존중、무엇보다 인간 존엄성의 존중은 건실한 경제ㆍ산업 및 과학 발전을 위한 궁극적인 지도 규범입니다』
인간 생명 존중에 대한 최우선적인 가치의 부여는 교회가 세상에 외치는 가장 중요한 복음의 메시지이다. 환경과 생명문제에 있어 핵 발전 만큼 상반된 의견이 맞서고 있고、현실적ㆍ구조적인 거대한 문제를 알고 있는 문제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주장에도 불구하고 핵 발전이 인간 생명의 위협으로 되고 있는 상황은 분명하다.
지난해 10월 23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주최한「핵ㆍ원자력 발전과 환경」세미나에서 경갑룡 주교는『핵무기가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처럼 핵 발전소도 인간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며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고 정부와 한전 당국의 핵 비밀주의에 유감을 표명했다.
원전사고는 단 한 번의 사고로 그 피해의 정도와 규모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참사를 야기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원천을 가까운 미래에 완전히 포기할 수 없는 현실적 타당성이 있다고 해도 인간 생명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울러 기존의 원천 및 핵 폐기물 처분장 건립 계획 추진에서 볼 수 있었던 단기적이고 행정편의주의적인 정책 추진、핵문제에 대한 비밀주의는 지양돼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정책의 방향 전환이 심각하게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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