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영광스러운 변모」(마태오17, 1~8:마르꼬 9, 2~8:루카9, 28~36)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함께 잘 드러난 사건으로서 신앙의 핵심 파스카신비 (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해에 큰 도움을 준다. 하느님은 이 사건을 통해 예수의 본래 모습, 하느님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그러므로 신앙의 정점인 부활의 신비를 미리 드러나게하는, 부활을 믿게하는 중요한 장면이 바로 이 영광스러운 변모이다. 동서방을 막론, 교회의 축일로 제정된(서방교회는 8월6일)「예수의 영광스러운(거룩한)변모」사건을 7세기의 성화를 통해 묵상해 본다.
◆신학적인 의미를표현
「예수의 영광스러운 변모」를 주제로한 이 모자이크(사진)는 설명이 간단치 않다.
산에서 일어난 이 사건을 한국인들이 그린다면 산을 그려넣을 것이다.
그러나 고대의 성화는 사실(寫實)적으로 묘사되지 않았다.
이 모자이크를 그린 화가도『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변모가 어디서 일어났는냐?』는 것을 묘사하려 한것이 아니라『그리스도의 변모가 뜻하는 신학적인의 미가 무엇이냐?』하는 것을 표현하려 하고있다.
이 그림에 등장한 인물은 예수 그리스도와 구약의 모세, 엘이야, 신약의 야고보, 베드로, 요한이다.
여기에 구약의 모세와 엘리야가 등장한 것을 유대인의 전승에 따른 것으로, 유일신 사상을 강조한 대표적인 예언자들이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림에서 모세(오른쪽 위)와 엘리야(왼쪽 위)의 광채에 빛나는 눈들, 손 그리고 모든 동작이 그리스도를 향해 모아져 있다. 손으로 예수를 가리키는 것은 예수께서 유일한 하느님이라는 것을 표현한다.
그런데 구약의 이 두인물은 그리스도론적인 신학에 흡입되고있다.
그리스도(가운데 위)의 옷은 빛을 상징하고 있다. 빛은 어둠에 반대되고 어둠은 해가 지는 것을 의미하면서「죽음의 날」을 상징한다. 계속되는 빛은 영원성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몸에서 8가닥의 빛이 나가고있다
7이 유대인에게 7일 창조를 상지하는데 비해 그리스도교의 전승에 따르면 8은 다음의 날로 부활을 표시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나타내
하느님을 보고싶어하는 강렬한 원의를 드러내는 동방교회 성화들은 강한 인상을 줄 뿐아니라 우리에게 깊은 신학적인 의미를 전달해준다.
이 모자이크에서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이 모두 빛으로 투영돼 있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그리스도의 인성, 곧 수난받는 그리스도와 조화되어 나타난다.
지금 이 모자이크에서 칼체돈공의회(4백51년)의 그리스도론적인 결론을 볼 수 있다.
그리스도는 참 하느님이요, 참 인간이라는 것을 빛과 영광의 흰옷 및 둥근 후광, 십자가로 나타냈다.
◆우리의 변모
영광스러운 변모(Transfiguratio)는 인간의 모습에서 다른모습으로 곧 하느님 아들의 모습으로 바꾼다는 뜻인데 깊이 묵상해보라!
누가 얼굴을 바꾸는가?
예수님의 얼굴이 달라지는가?
우리는 외적으로 드러나있는 모습을 통해 그 속에 재재해있는 더 깊은 신비를 읽자.
이 모자이크를 그린 사람은「영광스러운 변모」가 뜻하는바를 잘알고 있었다.
사도들은 예수를 보는 순간 그리스도의 얼굴속에 메시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곧 변모되는 것은 당시 사도들의 눈이다.
사도들의 놀라움에 가득찬 눈과 표정, 몸의 자태들을 보면서 우리는 사도들에 대해 생각할게 아니고 우리자신들이 변모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 성화가 가르쳐주는 바는 우리의 눈이 달라질 수 있도록, 나타나있는 모양 뒤의 참된 실재를 볼 수 있도록 청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영광스러운 변모와 파스카신비
이 모자이크는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던 사도들도 하느님을 쉽게 체험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베드로(밑 중앙)는 막 잠에서 깨어난 얼굴을 하고있다. 야고보(밑 오른쪽)는 무서운 체험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요한(밑 왼쪽)은 온유한 성격같은데 좀 조용한 경탄의 얼굴을 하고있다. 한국 사람에 가까운 표정이다.
모세와 엘리야도 좀 비정상적인 자세 인데 비해 오직 그리스도만이 완전한 평화를 풍긴다. 그리고 이 모든 장면의 중심은 말씀하고 계시는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의 배경은 어두운 것인데 하느님 신비를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이원형 바로 다음의 색깔은 조금도 어둡지않은 것인데 인간이 자기이성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조금씩 알 수 있다는 것을 표명한다.
우리는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 신비에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그리스도」의 파스카 곧 죽음과 부활은 인간이 하느님께 대한 새로운 인식에로 넘아가는 문이다.
곧 파스카신비가 의미하는 바는 인성이 새로와지고 축성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진정한 의미의 변모의 신비가 있다.
인간이 하느님의 아들이 되는 것, 세속의 인간이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것, 죄인이 정화되어 영광스럽게 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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