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본 대로 루터는1505년 여름 에르푸르트로 돌아가던 도중 7월 2일 벼락이 자기 옆에 떨어지자 엉겁결에 수도자가 되겠다고 약속하고서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에르푸르트에 있는 아우구스띠노 은수사회에 입회하였다. 이 수도회는 성 아우구스띠노의 규칙을 엄격하게 준수하는「수도 규칙 엄수파」로서 독일 내에서도 정통적인 수도회로 평판이 아주 좋았다. 이 개혁 수도회의 관구장은 학덕을 겸비한 요한 폰 슈타추피츠(Johannes von stau-pitz:1468/69-1524)였다. 그는 비텐베르그 대학교의 설립 공로자로서 신학대학의 초대 학장이었다.
수도회에 입회한 동기야 어떠하든 수도자가 된 루터는 열심히 생활했다고 본다. 그의 재능과 열심한 생활이 장상의 기대에 흡족하여 특별히 배려했기 때문인지 수도회에서 루터는 일찍부터 중요한 직책을 맡기 시작하였다. 2개월간의 청원기를 끝내고 1년 동안의 수련생활을 마친 7개월 후에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박사 학위를 받기도 전에 수도회의 공식 설교가로 활동하기 시작하였으며 비텐베르그 수도원의 분원장 직책을 수행했고 1515년에는 11개의 개혁 수도원을 관할하는 구역 대리 직책을 맡는 등 당시로는 파격적으로 짧은 기간에 여러 요직을 맡게 되었다.
그가 수도생활을 하며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은「성서」였다. 특히 아우구스띠노회는 수도자들이 성서를 자주 읽고 묵상하며 연구하도록 지도했기 때문에 루터는 보다 열성적으로 성서를 아주 가까이 하였다. 후일 그는『내가 수도원에 들어갔을 때 나는 성경을 읽고 재독, 삼독하였다』며『그래서 성서의 구절들을 줄줄 외울 정도였다』고 회고하였다. 루터가 정도에 지나치게 성서에만 몰입하는 것을 보고 수도원 신학교의 요한 나틴(Johan-nes Nathin) 교수는 당분간 성서를 읽지 말도록 충고하며 신학 저서들을 읽도록 권고하였다. 그런데 이 신학 서적들은 유명론적인 방법론에 의해 저술된 책들이었다.
그는 수도 서원을 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죄로 기울어지는 일체의 유혹도 사라지며 마음의 평정을 얻으리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허원을 하기 전과 지금의 내적인 상태가 크게 변화되지 않고 마음의 평정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죄의식이 늘 그의 마음을 괴롭혔다. 수련장 신부의 지도에 따라 개인 소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철저하게 청빈을 지키며 정결하게 살려고 노력하였다. 성무일도 등 기도 시간은 수 시간에 달했고、1년에 1/3에 가까운 시간 동안 단식을 지켰으며 겸손의 덕을 익히고자 가끔 문전걸식도 하고 고해성사도 자주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노력도 그의 죄의식을 떨쳐 버리기에는 별 도움이 안 되었다.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개인의 구원문제였는데,「근엄한 심판자이신 하느님」께서 자기를 구원의 대상에 포함시켰는가에 대한 의심이 커지면서 더욱 불안해지기 시작하였다. 만일 그가 구원의 대상에 포함되었다면、어떻게 죄로 유인하는 욕정(Concupiscentia)이 생길 수 있겠는가 근심하며 아무래도 자신은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지 않았는가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조그마한 규칙이라도 어기면 죄의식에 사로잡혀 즉시 고해성사를 보는 등 세심증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그의 잦은 고해성사에 대하여 걱정하던 영성 지도신부는 큰 죄가 아니면 고해소에 오지 말도록까지 권고할 정도였다. 슈타우피츠 관구장 신부가 에르푸르트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열심하지만 소심증을 드러내는 루터를 보고 걱정하면서『마르띠노、이러한 유혹이 너에게 필요하고 유익한 줄 모르는가? 하느님은 아무런 목적없이 너에게 이런 시험을 않으신다』라는 말로 격려하며 성서를 못 읽게 한 금령을 풀어 주었다. 이제 루터는 그의 내적 갈등의 문제들을 성서에서 찾으려 하였으나、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해석에 따랐다.
세례를 받는다고 하여 죄에 기울어질 수 있는 욕정 자체가 말끔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욕정 자체는 세례성사를 통하여 받게 되는 은총의 도움을 받으며 인간의 자유 의지로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 욕정 자체가 바로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루터는 욕정 자체를 죄로 착각하였던 것 같다. 수도허원을 하거나 사제품을 받는다고 하여 그순간 날개만 달면 하느님께 날아갈 수 있는 천사로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께 봉헌된 신분에 합당하게 생활할 수 있는 특별한 은총을 받으며 하느님의 사람으로 축성되는 것이다.『성부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자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완덕의 목표요 이상이며 각자는 자기 그릇의 양에 맞게 채우면 되는 것이다. 공자는『성자는 천지도요, 성지자는 인지도』라고 말했다. 즉 성 자체는 하늘의 도이지만 성의 경지에 이르려고 노력하는 것은 인간의 길이라는 뜻일 게다. 진정한 신앙인이란 양심적으로 최선을 다하고、그 결과를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의 섭리에 맡기는 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은 자신을 지나치게 믿었던 교만으로 생길 수도 있다. 때로는 소화 데레사 성녀처럼 자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극복되지 않는 결점을 하느님 탓으로 떠넘기는 뻔뻔스러움도 간혹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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