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결코 흉이 아닙니다. 조금 불편할 따름이지요. 오히려 시각 장애를 가진 딸 성선이는 우리 가정이 더 큰 마음의 눈을 떠 불편하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느님이 주신 은총의 선물인지도 모릅니다』
강지훈씨(41세ㆍ안토니오)네는 몸은 멀쩡하나 마음의 눈을 뜨지 못한 장애 아닌 장애인들을 향해『신체 장애에 대한 인식 전환』을 힘겹게 외치고 있는 가정 중의 하나다.
아직「계란으로 바위 치기」지만 언젠가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변화되고 장애인에 대한 각종 복지도 향상돼서 예쁜 딸 성선이(11세ㆍ루시아)와 같이 사람들이 각자 간직한 소중한 꿈을 실현해 나갈 수 있도록 계기와 여건을 만드는 것이 강씨 가정에 맡겨진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현재 가톨릭 산하의 유일한 맹학교인 충주 성모학교에서 공부하며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 성선이를 위해 강씨와 부인 홍선옥씨(36세ㆍ데레사)、아들 정문이(8세ㆍ프란치스꼬)는 매주 일요일 충주로 내려가는 것이 하루 일과로 정해져 있다.
『성선이는 그나마 행복한 아이예요. 정상아라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학교에 가서 공부할 수 있지만 장애 아동들은 그럴 만한 기회나 시설조차 미흡한 형편이거든요』
정상 아동보다 오히려 고육이 더 절실한 성선이를 위해 전국 각지의 맹아학교를 둘러봤던 강씨 부부는 자신의 딸아이를 안심하고 맡겨놓을 만한 학교를 쉽게 발견할 수 없었다.
성모학교에 처음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충주 지현동 성당 마당 한켠에 지어진 교사며 기숙사는 너무나 낙후해 보였다. 사랑의 씨튼수녀회가 운영한다는 것만을 믿고 성선이가 6살 나던 해 유치부에 입학시켰다. 이후 비록 시설은 낡았지만 무엇보다「사랑」으로 장애 아동들을 대하고 가르치는 교사와 수녀들의 헌신적인 모습이 수녀들의 헌신적인 모습이 강씨 부부에게 커다란 위안을 가져다 줬다.
『그러나 성선이를 학교에 맡기자 친척들은 우리 부부가 장애인 딸을 키우기 싫어 버리려 한다는 식으로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가 겪는 가장 어려움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오해가 아닐까 합니다』
오랫동안 인큐베이터에 있던 성선이가 시각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전례가 없었던 이 장애 아동의 탄생을 두고 양가 친척들은 서로 의심하기도 했었다.
『장애인들은 교육받지 않으면 결코 자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회의 벽은 너무나 두텁습니다. 다급한 장애 아동 부모들이 나설 수밖에 없는 거지요』
그래서 강씨 부부는 지난해 발족한「가톨릭 시각장애인 부모회」를 결성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초대 회장직을 맡고 있는 강지훈씨는『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로 가정에서 부모들의 폐쇄적인 생각과 행동에 기인한다』는 데 초점을 맞춰『가정에서부터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자』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장애인 자녀들이 자활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주고 낙후한 장애인법을 선진국화시키는 데 앞장서며 자신의 자녀뿐만 아니라 맹중복 장애 아동 등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이웃에게도 눈을 돌리겠다는 다짐 아래 가톨릭 시각장애인 부모회는 매월 둘째 주 목요일 모임을 갖고 있다.
가톨릭 시각장애인 부모회는 최근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 인식을 변화시키는 홍보 포스터를 제작 중에 있으며 자활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후원회를 조직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강씨 가정이 또 나서서 벌이는 일은 충주 성모학교에 새 교사를 짓는 일이다.
새로 땅을 마련해 현대식 건물로 기숙사를 완공했지만 학교는 아직 지현동 성당 안에 마련돼 있어 장애인들이 버스를 타고 학교와 기숙사를 오가야 하는 번거로움을 하루 빨리 벗어나게 해주고 싶지만 몇몇 개인의 힘으로는 태부족이다.
『딸아이의 눈을 뜨게 하려고 안 해본 것이 없어요. 용하다는 의원은 다 찾아가 보고 개신교의 기도원에 가서 안수를 받아보기도 하는 등 별의별 것을 다해 봤어요. 아직도 많은 부모들이 우리 가정의 전철을 밟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부모들이 먼저 눈을 떠야 합니다. 하루 빨리 장애인 자녀의 진로를 결정해 주는 것이 자녀를 위해 가장 시급한 일입니다』
성선이의 꿈은「음악 교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강씨 가정의 소망이기도 하다.
비록 육신의 눈은 보이지 않지만 마음의 눈을 통해 피아노와 바이올린、음악 공부를 하는 성선이가 음악 교사가 되는 날까지、다른 장애인들이 사회의 곳곳에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날까지 강씨 가정이 펼치는 장애인 처우 개선에 대한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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