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만(데레ㆍ77세) 할머니는 서울 서교동의 뒷골목에서 1평 반 남짓한 크기의 전세 2백만 원짜리 방 한 칸에서 홀로 살아가는 무의탁 노인이다.
퇴근하는 사람들의 바쁜 걸음으로 거리가 부산하고 각 가정에서는 온가족이 함께 할 식사 준비로 분주한 저녁시간、거리의 네온사인도 휘황찬란해졌지만 할머니의 방에는 불도 켜지지 않는다.
『혼자 사는데 뭐 불을 켤 일이 있느냐』는 할머니는 웬 만한 가재도구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생활하고 있다.
온종일 어떻게 지내냐는 기자의 물음에『그저 이렇게 우두커니 앉아 시간 가는 것만 보고 있다』는 할머니는 6ㆍ25로 남편을 여의고 어렵게 키운 외동딸마저도 가출、의지할 곳 없이 혼자 살아가고 있다.
◆신체 이상이 최대 애로
거택보호대상자로 지정돼 동사무소에서 주는 쌀 20kg과 최저 생계비조로 5만 원 정도를 지급받고 이웃들이 조금씩 도와주는 것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할머니에게 가장 큰 애로점은 다름아닌「몸이 아플 때」다.
지병인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할머니는 의료보호 지정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지만 잘 낫지 않아 고생하고 있다. 다른 병원이라도 가보고 싶지만 경제적인 여건이 허락치 않는다.『감기 몸살이라도 앓으면 몸을 움직일 수가 없으니 병원도 갈 수가 있나? 밥도 못해 먹어 굶을 때가 많아』
김 할머니는 그나마 국가에서 주는 조그만 혜택이라도 받아 생계를 유지해가고 있지만 남희순 할머니(63세)의 경우는 정말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슬하에 자식이 없던 남씨 할머니가 남편을 여의고 고향인 광주를 등지고 서울로 올라온 것은 80년. 서울 관철동에 월세 15만 원짜리 방 한 칸에서 생활하고 있는 남 할머니는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려 생활보호 대상자로 지정받지 못했다. 매일 소일거리를 찾아 나서는 할머니는 당장 일하지 않으면 먹을 것은 고사하고 길거리로 나앉아야 할 형편이다. 어떻게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남씨 할머니의 소망은「기본적인 의식주 해결」이다.
급격한 경제 성장과 산업화、전통적인 가치관 및 규범의 상실 등으로 인해 가정 안에서 떠밀려 나온 이들 노인들은 그러나 양로원이나 요양원 등의 시설을 한사코 마다하며『시설에 가면 지금과 같은 자유조차도 없어진다』고 입을 모은다.
◆시설 수용 한사코 거부
「낡고 비좁아 짐만 될 뿐인 시설에는 결코 가지 않겠다』는 노인들의 심정은 무료 시설에 입소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거택보호 대상 노인이 12만5천여 명인데 반해 수혜 가능 인원은 7천여 명에도 불과한 우리나라 노인복지시설의 현황에서 금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노인복지시설에는 이 자리마저 남아도는 실정이어서 무의탁 노인들이 시설에 가지 않으려는 추세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노인문제 전문가들은『앞으로 산업이 고도화되면 가족 해체도 필연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70년대 60세 이상 노인 중 자녀와 동거하지 못하는 비율이 7%였던 것이 80년에 14%、91년에는 29%로 늘어났으며 2천년대로 접어들면 43~45%、2010년에는 70%를 상회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 조사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저소득층에서 60살 이상 노인의 비율이 13.3%에 이르고 있으며 특히 저소득층 노인의 64.9%가 혼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조사 대상의 55.5%가 자녀가 있는데도 별거하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다.
자식들과 같이 살 만한 방도 없을 뿐만 아니라 나와 살아도 경제적인 지원을 해줄 형편이 못 되는 자식들이기에 이들 노인들은 대부분 무의탁 노인처럼 살아가고 있다.
우리 사회가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가족 구조가 핵가족 단위로 변했고 맞벌이 부부와 결손가정의 증가로 노인 부양기능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자식이 있으면서도 혼자 살아가는 무의탁(?) 노인들의 문제는 심각한 지경이지만 여기에 대한 정부의 복지 대책은 너무도 안일하고 시기에 적절하지 못하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부 정책 “속 빈 강정”
50년대 전쟁과 가난을 겪으면서 오로지 자식 출세해왔던 이들 노인세대는 자신의 형편에 맞게 노후대책을 마련하는 미래의 노인세대와는 다르다. 따라서 미래의 노인들이 아닌 지금 당장 빈곤과 건강, 정서적 고독감과 함께 역할 상실감의 4고를 가정 밖에서 혼자 감당해야 하는 지금의 노인들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현재 정부에서 노인 복지 정책으로 도입하고 있는 제도는 △효행자 포상 △경로우대증 △노인능력은행 △노인 공동작업장 △재가 노인봉사 △무료건강진단 △복지시설 경로당 지원 △시설 수요 노인 결연사업 등으로 매우 다양하지만 그 내실은「속 빈 강정」인 실정. 어렵게 살아가는 무의탁 노인들이 최우선적으로 희망하고 있는 것은 무료 건강진단제도、노인병원、간병인 제도 등 건강을 위한 복지 프로그램이다.
늙고 병들어 대부분 만성질환을 갖고 있는 노인들이 혼자 살아가면서『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불안감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다.
최근 가톨릭 교회 안에서 이러한 무의탁 노인들을 위한 실질적인 복지사업에 나서는 본당들이 있어 주목을 끌고 있기도 하다. 상봉동 본당 공덕동 본당、고덕동 본당 등은 성당 안에 노인시설을 마련、본당 공동체가 할머니에게 가정의 울타리를 제공해 주며 가정의 안에서 건강에 대한 염려와 소외감을 잊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또한 본당에 한 공간을 이용, 노인들이 거주할 수 있도록 해 본당의 사제 및 수도자와 본당에 산재한 봉사단체 회원들이 번갈아 가며 노인들의 의식주는 물론 말벗이 되어 주는 등 얼마 남지 않은 노후를 즐겁고 편안하게 살아가도록 본당 가족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최근 정부가「재가 노인 복지」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토대로 교회 안에서도 무의탁 노인들을 위한「가정 봉사원」의 육성、확대 실시가 적극 요구되고 있다.
◆라면으로 떼우기 일쑤
87년 무의탁 노인 결연사업을 벌이던 한국 노인복지회가 경제적 어려움 외에도 신체적 노쇠와 정서적 고독감을 느끼는 노인들을 위해 무급 지원 봉사자를 모집、활용하면서 널리 알려진「가정 봉사원」은 무의탁 노인들을 주 1~2회 방문、가사를 도와주고 말벗도 되어주며 병원에 함께 가거나 주위의 이웃들이 건네주는 성금을 전달하는 등의 일들을 하고 있다.
지난 91년부터 가정 봉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성창순씨(세실리아ㆍ53세)는『배급 받은 쌀을 어디다 둔지 몰라 며칠씩 라면으로 떼우는 할머니를 보면서 정말 내가 이분의 딸이 되어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매주 한두 번씩 방문、할머니를 도와 드린다고는 하지만 할머니에게 배우는 생활의 지혜와 사랑은 오히려 내게 생활의 활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소년소녀가장」결연사업과 마찬가지로 소년 소녀와 무의탁 노인 결연사업을 함께 벌임으로써 보다 실질적인 생활의 안정과 잃었던「가정」을 되찾아 줘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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