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부턴가 쓰레기통이 잘 보이질 않는다. 거리는 물론이고 상가 건물이나 지하철역, 심지어는 공공 화장실에서조차 쓰레기통 찾기가 쉽지 않아 다 마신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집까지 들고 오는 때도 종종 있을 정도다.
깨끗한 거리, 깨끗한 공공장소를 만들기 위해 시행한다고는 하는데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많은 건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이 앉았던 자리나 건물 안에 놓아둔, 분명 보기 좋으라고 두었을 화분 뒤쪽에서 다 먹고 버린 음료수병이나 쓰레기들이 요즘 들어 자주 눈에 띈다. 어찌 보면 쓰레기통 없는 불편함이 마음의 불편까지 만들어 내는 건 아닌지 영 마땅치가 않다.
동생 신부님과 함께 서울에 있는 큰 종합 병원을 갔을 때의 일이다.
진료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문이 열리는 데 누군가 버려두고 간 빨간 콜라 캔이 시야에 들어왔다. 한쪽 구석 바닥도 아닌 엘리베이터 정면 팔걸이에 참 뻔뻔스럽고도 얄밉게 놓여있는 것을 보니 나도 모르게 욱 화가 났다.
“진짜 몰상식하다. 어떻게 여기에 이렇게 버리고 가냐”부터 시작해 기본 매너, 양심, 시민 의식까지 들먹이며 한참을 투덜거렸다. 한마디쯤 맞장구 칠만도 하건만 동생 신부님은 묵묵히 서 있기만 했다.
‘하긴 신부님 체면에 같이 욕할 수는 없겠지’라며 나름 이해를 하며 얼굴도 모르는 얌체족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그런데 “땡~” 진료실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말 없던 동생 신부님이 빈 콜라 캔을 주워들고 내리는 게 아닌가!
아, 밀물처럼 몰려오는 머쓱함과 부끄러움….
그 콜라 캔을 내가 버려줘야겠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쓰레기를 버린 사람의 잘못이 100이라면 보고도 지나치는 잘못은 90쯤 될까. 그런데 나는 욕까지 했으니 버린 사람과 똑같거나 더 나쁘지 싶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기는 죄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남을 판단하면서 자기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으니 결국 남을 판단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단죄하는 것입니다.(로마 2,1)”
말씀 한 구절에 오늘도 ‘깨갱’이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