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 꼬박 24시간을 투자해야 도착할 수 있는 머나먼 남미 대륙의 한국인 이민 역사는 1963년 농업이민 목적으로 103명이 브라질 산토스 항에 첫 발을 내디딘 것으로 시작된다. 칠레의 경우 1970년 5가구의 화훼 재배 농가가 이주하면서 교포 사회가 형성됐다. 가톨릭 공동체는 1981년 신자 7세대가 현지어(스페인어) 미사를 봉헌하며 씨앗을 틔웠다. 물설고 낯선 칠레 땅에서 스스로 신앙 공동체를 일궜던 이들의 노력은 1982년 고(故) 김수환 추기경 방문을 계기로 칠레한인본당이 설립되는 밑바탕이 됐다. 2009년부터는 대전교구와 산티아고대교구 간의 피데이 도눔(Fidei Donum, 신앙의 선물)으로 대전교구에서 사제가 파견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본당 주임으로 부임한 장우일 신부는 “공동체 모습이 스스로 공부해 신앙을 터득하고, 자발적으로 중국까지 가서 세례를 받고 성직자 영입 운동을 벌였던 한국 천주교회 초기 공동체와 상당히 닮아 있다”고 말했다. 그런 만큼 “본당 신자들의 신앙이 참으로 단단하고 튼튼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본당 신자 수는 50~60세대 240명 정도다. 평균 주일미사 참례자는 100여 명을 헤아린다. 사목협의회와 구역 모임이 구성돼 있고, 레지오·주일학교·성가대 활동도 펼쳐진다.
장 신부는 “남미까지 오게 된 과정 자체가 다들 너무 애절하고 치열하기에 정말 잘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하고 “분명한 점은 신앙에 대한 갈증이 상당하고, 그래서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매우 적극적이다”고 밝혔다.
이민의 날을 맞아 교포사목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는 “교포사목은 장소만 멀리 떨어진 한국교회 사목이 아니라 현지인 선교 사목에 준하는 준비가 요청된다”고 강조했다. 해당 국가의 분위기, 문화와 역사, 실태 등을 잘 알아야 가능한 사목이라는 점에서다.
“교포들은 분명 한국인이지만, 한국에서 사는 이들과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목이 결국 공감대 형성이고 양떼 안에서 함께 지내는 것이라면, 교포사목의 첫걸음은 교포들을 먼저 잘 이해하고 그들과 융화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지 문화와 역사 등을 잘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이민 1세대들이 노령화되는 상황에서 이민 2세대, 3세대로의 신앙 대물림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 같다”고 밝힌 장 신부는 2·3세대들과의 소통 문제는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런 면에서 “교포사목의 개념 자체를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장 신부는 한국 신자들에게 “한 목소리로 일치하고 겸손하게 사회 정의에 힘쓰는 교회 모습을 전해 달라”고 요청했다. “세속 안에 살지만 거룩함을 드러내는 자랑스러운 고국 교회 모습은 이역만리에 떨어진 교포 신자들에게 자부심이자 좋은 표양이 돼 줄 것”이라는 당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