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연중 15주일:리마
리마에 도착하고 보니 겨울이다. 북반구와는 달리 이곳은 지금이 한 겨울인셈이다. 위도로는 적도에 가까워서 춥지는 않았지만 새벽 공기는 좀 쌀쌀하였다. 일년 내내 비가 내리지 않는 곳이란다. 겨울은 오늘처럼 구름 속에 덮여 있는데 구름이라기 보다는 습기찬 안개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알맞겠다. 이곳 메리놀회지부장이신 윌리암 신부(Fr. William McCar-thy.M.M)가 공항에 마중나와 주셨다. 숙소까지 오는 택시 안에서 신부님은 친절하게 이것저것 설명해 주셨는데 리마는 완전히 다른 두 사회로 나누어져 있다는 말씀이 귀에 크게 울려왔다. 물론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사회로 말이다.
만남:로스앤젤스에서 헤어졌던 주교님과 다시 만났다. 주교님은 계속되는 비행기 여행으로 무척 피곤하실 것이다. 시차의 적응, 말과 풍습의 적응, 그리고 예상 외의 차질들이 계속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오후에 주교님과 함께 지부장의 안내로 외국선교자들이 사목하는 현장을 찾아보러 나섰다. 우선 우리 나라에서도 선교활동을 하시는 메리놀회와 골롬바노회신부들이 사목하는곳을 찾아갔다. 그들의 사목현장은 한마디로 가난한 사람들의 사회였다. 이곳은 앞서 말한대로 비가 안오는 곳어어서 파리프로 물을 끌어들이지 않은 곳은 사막인 셈이다. 사해(Dead Ses)라는 명칭이 있듯이 높은 지역은 그대로 사산(Dead Mount)이랄 수가 있겠다. 구릉지역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판자집들, 실제로는 판자로 지은 집이 아니고 갈대 돗자리 같은 것으로 둘러친 집들이다 - 비가 안 오니 지붕들은 매구 엉성하게 얹어 놓았다 -
인구 6백만의 도시에 백만이 이런 삶을 산다하니 광주시만한 인구가 이런상황 속에 있는 셈이다. 도시화 현상에서 빚어지는 온갖 문제들, 그 문제들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의 생활을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사목하셨던 소신부(P.Jose Sandoval, M.C와 허신부(Fr. Morris Foley, s.s.c)를 만났다 이구동성으로 한국보다 훨씬 일손이 부족한 추수현장이란다. 소신부는『마음은 한국에 있고 싶은데 머리는 이곳에 있으라고 한다』고 했다. 우리는 다시 변두리 지역의 어느 본당을 방문하였다. 아주 젊은 미국신부가 사목하는 본당이었는데 이 신부는 시카고교구의 신부로서 메리놀회의 소위Misionero Asociado이다. 외방선교회에 배속된 교구신부라고 할수있다. 그냥「아소씨아도」신부라고들 부른다. 페루에는 이런신부들이 많이 있었다. 소위피데이도움(Fidei Donum)선교사로 파견되었지만 직접 어느 교구에 배속되는 대신 일단 외방선교회에 배속되어 그 선교회의 물질적 정신적지원 속에서 교구의 본당을 사목하는 것이다.
이 본당은 Ciudad de Dios라는 동네에 있었다. 하느님이 도시라는 동네인 셈인데 그 이름이 너무 아이러니칼하게 들렸다. 쓰레기와 판자집들로 뒤덮인 동네였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도읍을 이런곳에서는 이렇게 드러내시는 것일까?
성당 제단 좌측에 세워진 십자가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거친 통나무로 된 십자가인데 가운데에 가시 철사관을 걸고 INRI라는 팻말대신 No Mata as라는 팻말을 박아놓은 것으로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었다.
얼마전 감옥에서 죄수들이 - 아마 양심수들이었던 모양이다 - 그들을 돌보러온 수녀들의 앰블런스를 타고 탈출하려던 사건이 있었다. 이를 발견한 간수들이 무차별 사격을 가해 이사람들뿐 아니라 수녀들도 몰살당했다. 이때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여성이 있었다. 평신도로서 수녀들을 도와 수인들을 돌보던 아가씨였는데 총알이 폐를 관통했는데 죽음을 면한것이다. 그녀는 이때에도 간수들에게 No Mataras(죽이지 말라)라고 외쳤지만 이사건을 전해듣고 분노한 군중들에게도 같은 말을 외쳤던것이다. 그래서 이말은 이곳 사람들에게 비폭력(Non-Violence)의 구호가 되었다 한다.
나는 메리놀회 지부에서 그녀를 만났는데 참으로 양순하게 생긴 아가씨였다. 그녀는 지금도 페루 주교회의 산하 정의평화 위원회의 한 사람으로서 감옥에서 수인들의 안전을 돌보는 일을 계속하고 있단다.
말씀:예수께서 열두제자를 불러 파견하셨다.
『…머물러 있어라.…떠나거라.』(마르꼬6, 7~13).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말라고 명하셨다. 다만 악을 제거하는 힘(7절, 13절)과 말씀(11절, 12절)만 가지고 가도록 해주셨다. 이곳 선교사들에게는 악과 싸워 이길힘과 말씀밖에는 더 필요한 것이 없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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