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시책에 이용당하는 신자와 성직자
애국교회와 그 교회에 임명된 신부들은 주위에서 많은 불신을 받고 있지만 그 불신은 간혹 합당치 않은 때도 있다.
그 신부들은 1950년도 말에 거의 강제적으로 애국 교회에 속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주 경미한 일에 협력만 해 준다면 된다고 했던 것이다. 즉 바티깐이 정치권력의 정부라는 것을 부인하는 문서에 서명 하는 것 뿐이었다. 그것이 공산주의가 요구하는 전부였다.
그러나 그후에는 점차 그들이 처놓은 그물에 깊이 걸려들게 되었다. 결국에 가서는 로마 교황과의 어떠한 관계도 포기하는 서약서에 서명을 해야만 했다.
그들은 오늘날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신자들이 적어도 이러한 방법으로 미사에라도 갈 수있고, 그리고 최소한도의 신앙생활이라고 가능케하기 위해서 이렇게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도 1966년 홍위대가 모든 종교적인 자취를 말살해버릴 때 벌써 20년의 징역형을 받은 신부나 혹은 강제 수용소로 사라진 신부들과 하나도 다를바없이 다 같은 고난의 길을 걸어야했다.
7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 등소평의 개방정책이 시작될 때 그들은 다시 자기교회로 돌아왔지만 역시 애국교회에 속한채 그대로 남아있어야 했다.
외국에 있는 친구들이 그들을 방문하면 개인적으로 그들의 신앙은 변함이 없고 로마에 있는 베드로의 후계자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이미 노인이 되었고 그들의 생할도 정부에 의해서 유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그들 중에 많은 신부들이 그러한 가운데서도 이러한 어쩔수 없는 상황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길을 발견 한 것같다.
그들은 이미 늙고 병들어 이제는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 성무집행을 그만 두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한 시기에 불행히도 이미 결혼했던 신부들은 로마 교황의 환속 관면을 바라고 있는 실정이며 뉘우치는 마음에서 미사 집전을 하지않고 있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비록 그러한 신부들일지라도 애국교회에 협력치 않고 뉘우치고 있는 신부들은 신자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물론 적극적으로 정부의 손발이 되어서 모든 것을 다 바친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신자들로부터 배척 당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신자들이 누가 애국교회 신부인지 누가 로마 교회에 속한 신부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수년간 자기 신앙을 배반한 가톨릭가정에서 태어난 어떠한 나이 많은 당원은 늦게서야 어떤 신부가 어느쪽에 속한다는 것을 알고 대단히 후회한 일이 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밤에 고백성사를 보기위해서 몰래 성당으로 갔다.
그는 신부님에게 자기가 살아온 일생에 대한 것을 모두 고해를 했다. 그러나 그는 그 다음날 체포되었다. 공산당이 고백소에 도청장치를 했다고는 볼 수 없고 필경 신부가 그를 고발했을 것으로 믿는다. <계속>
※사진제공ㆍ성베네딕또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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