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크리스찬적으로 믿는다는 것은 자기의 창조주께 자신을 던짐으로써『하느님과 대화를 나누는 초대를 받아들임』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의식적 신앙은 교회가 오늘의 세계 속에 살고있는 모든 백성과 비신자들과도 나누어야하는『구원의 대화』에도 우리를 준비시켜 줍니다. 『현대인들 중에서 많은 이들은 신앙으로 이루어지는 이같은 하느님과의 깊은 생명의 결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아주 노골적으로 배격하고 있다』(사목헌장19). 따라서「사목헌장」에서 공의회는 무신앙과 무신론에 대한 입장도 밝혔습니다. 더욱이 공의회는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성숙되고 지각있는 것이라야 하는지를 말해줍니다. 우리는 비신자들과 무신론자를 앞에서 신앙을 증거하도록 자주 촉구받습니다. 바로 이 시대에 우리의 신앙은『난관을 밝히 인식하고 그것을 굴복시킬 수 있도록 훈련받아야 한다』(사목헌장21). 이것은 구원의 대화를 위한 필수적 조건입니다.
간략한 무신론 분석
2, 공의회헌장은 간략하면서도 날카롭게 무신론을 분석합니다. 먼저 무신론이라는 용어를 살펴봅니다. 『무신론이란 서로 다른 여러가지 현상을 지칭한다.
명백히 신(신의 존재)을 부정(무신론)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인간은 신에 대해서 전혀 아무것도 주장할 수없다. (불가지론=不可知論)는 사람도 있고, 또 신에 대한 문제자체가 전혀 무의미해지도록 문제를 다루는 방법(실증주의, 과학만능주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주제넘게도 자연과학의 한계를 넘어서 만사는 과학적 이론만으로 설명할수 있다고 주장하거나 혹은 반대로 전혀 아무런 절대적 진리도 인정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또 하느님께 대한 신앙이 무색할 정도로 인간을 지나치게 예찬하다. 그들은 신부정보다 인간긍정에 급급한것같이 보인다.
또다른 사람들은 제멋대로 상상해서 신을 그려놓고 그 신을 부정하지만 그런신은 결코 복음에 나타난 신이 아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신에 관한 문제를 취급도 하지않으려한다. 그들은 종교적 불안을 체험하지도 못하는것같고, 왜 종교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조차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무신론은 세상 죄악에대한 격심한 반발에서도 생기고 혹은 인간적 가격화 하는데서 생기는 경우도 드물지않다. 또한 현대문명은, 물론 본질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겠지만, 지나치게 지상 사물에만 열중하기 때문에 가끔 하느님께로의 접근을 더욱 곤란하게 만들수있다』(사목헌장19)
실용주의적 태도
3, 공의회 문헌은 우리가 알수 있는바와같이「무신론」이라는 용어아래 담긴 다양성과 복수성을 지적해줍니다.
틀림없이 이것은 종교적 문제에 대한 경솔함이나 관심부족에서 나오는 실용주의적 태도일때가 아주 흔합니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 이러한 태도는 세계의 전체적 사고방식 특히 과학적 사고방식에 그뿌리를 갖고있습니다. 사실 인식적 확실성의 원천을 오로지 감각적 경험이라고 인정한다면 감각을 초월하는 실재에 대한 모든 접근이 제외되고 맙니다. 이러한 인식태도는 우리시대에「사신신학(死神神學)」이라는 이름을 붙인 특정사고의 바닥에 깔려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무신론과 더욱이 불가지론의 동기들은 단순히 실용주의적 성격이 아니라 이론 - 인식적 성격을 띠기도 합니다.
4, 공의회가 강조하는 두번째 그룹의 이유들은 과장된 인간예찬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적지않은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이 우연적 존재(偶然的存在)이며 존재에 있어서 유한하다는 명백한 진리를 잊어버리도록 유도합니다. 삶의 실재와 역사의 실재는, 볼수있는 세계에서 인간의 위대한 존엄성과 우위성을 인정할 이유들이 있지만 인간을 절대자로서 보고 하느님을 거부할 근거는 없다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날로 새롭게 관찰하도록 해줍니다.
사목헌장은 말합니다. 현대 무신론은 『인간의 자주성을 강조한 나머지 신에게 대한 어떠한 예속에도 저항하려한다. 이런 무신론의 창도자들은 인간이 스스로 자기목적이며 인간역사의 유일한 창조자요 조화신(造化神)이라는 점에 인간의 자유가 있는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만물의 창조주며 목적인 신의 긍정과 조화될수 없으며 적어도 신의 긍정을 무의미한것으로 만들어버린다고 그들은 고집을 세운다. 현대의 기술발전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만능의식은 이런 학설을 옹호할지 모른다』(사목헌장20)
사실 오늘날 체계적 무신론은『인간의 구원(자주성)을 경제적 내지 사회적 해방에서 기대한다. 종교는 본질적으로 이런 인간 해방에 장애거리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종교가 허황된 후세 생명에 대한 희망을 일으켜주며 인간을 지상 국가 건설에서 외면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학설의 신봉자들이 정권을 잡고있는 지역에 있어서는 종교를 맹렬히 공격하며 특히 청소년 교육 면에서 공권이 장악한 모든 탄압수단을 다하여 무신론을 선전하고 있다』(사목헌장20).
이 마지막 문제는 공의회의 관계선언문「종교자유에 관한 선언」이 강조한 종교자유의 원칙을 명백하고 확고하게 표명할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거부
5, 만일 우리는 무신론에 대한 교회의 기본태도가 무엇인가를 이제 말하고자 한다면 교회는 그것을『단호히』(사목헌장21) 배격한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존재는 이성으로 도달될수 있다는 신념을 내포하는 크리스찬 신앙의 본질자체와 모순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회는『비록 무신론을 절대적으로 배격하지만 믿는 사람이나 믿지않는 사람이나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살고있는 이 세상을 바로 건설하는데에 함께 노력해야함을 진심으로 선언하는 바이다. 이일은 물론 성실하고 현명한 대화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사목헌장21).
교회는 특히 하느님의 존재를 악과 고통에 대한 수다한 경험과를 조화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민감하다는 것을 덧붙여말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동시에 교회는 자신이 선포하는 것 - 복음과 크리스찬 신앙 - 이『인간의 마음속 깊이 숨어있는 소망과 일치한다는 것을 교회는 명백히 알고있다. 그것은 하느님께 불린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며 보다 고상한 목적에 대하여 실망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희망을 주기때문이다』(사목헌장21)
다른 한편, 무신론을 배격 하면서도 교회는『신부정(神否定)의 숨은 이유를 무신론자들의 마음속에서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또 교회는 무신론이 일으키는 문제들의 중요성을 의식 하며 모든 사람에게 대한 사랑에 이끌려 이런 문제들을 진지하게 또 깊이 검토해야한다고 생각한다』(사목헌장21).
특히 교회는『성신의 인도를받아 자신을 끊임없이 쇄신 정화하며』(사목헌장21)무엇이든지 믿지않는 사람들에게 당연히 상처를 줄수있는 것을 자신의 삶에서 제거하기 위해 진보하는데 관심을 씁니다.
교회는 응답한다
6, 그러한 시도로써 교회는『신앙은 무엇인가?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도록 다시한번 우리를 도와줍니다. 때로 종교를 거슬러, 특히 그리스도교를 거슬러 계획된 투쟁의 형태를 취하는 바로 무신앙과 무신론을 배경으로 해서 도와줍니다. 바로 그러한 적대 때문에 신앙은 모든 인간에 대한 깊은 책임감과 사랑으로 특징을 이룬, 특히 의식있고 침투적이며 성숙돼야 합니다. 어려움들과 반대들과 박해들을 의식함으로써『우리안에 간직하고 있는 희망에 대해서』(Ⅰ베드로3, 15) 더욱 더 증거할 태세를 일깨워야 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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