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인 체취를 풍기는 사람」「영원한 안동인」으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는 전임 안동교구장 두봉 주교(65ㆍ파리외방전교회). 90년 10월 22년간 봉직했던 안동교구장직을 사임하고『시골 본당이나 공소 사목을 하며 평범하게 살고 싶다』던 그의 바람대로 지금의 거처(경기도 고향)로 옮겨온 두봉 주교를 본지 창간 67주년을 맞아 만나보았다. 3월 21일 오후、과거 행주성당 자리에 가건물을 지어 만든 집무실에서 두 주교는 예전과 다름없는 맑고 소탈한 웃음으로 기자를 맞았다.
◆매년 20회 피정 지도
-주교님 안녕하십니까. 바쁘신 중에도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난 90년 안동교구장을 사임하신 후에도 전에 못지않게 바쁘게 살아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안동교구장 사임 후 한 달간 피정을 하고 몇 달간은 외국에 나가 있었지요. 김 추기경님의 권유로 서울교구에 오게 됐는데 공소에 머물고 싶어서 12군데 공소를 다 둘러보았지만 마땅한 곳이 없던 차에 이곳을 소개받아 오게 됐습니다.
그동안 성직자 수도자 피정 지도에 대부분 시간을 보냈습니다. 일 년에 보통 20회 정도 피정 지도를 한 셈인데 한 달 중에 보름 정도만 집에 있고 나머지는 전국을 돌아다닙니다. 요즘 같은 사순절에는 와 달라는 데가 많아 무척 바빠요(웃음).
-올해가 주교 성성 25주년이 되는 해이고 한국에 오신 지 40년째 되는 해로 알고 있습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요. 혹 계획 중인 주교 서품 은경축 행사라도 있는지요.
▲안동교구에서 아마 교구 설정 25주년 행사를 5월 29일 갖기로 하고 지금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초청 받았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작년에 서품 40주년을 맞아서 같이 서품된 동료들과 이 집에서 미사도 올리고 하루를 즐겁게 보냈습니다. 외적인 행사는 없었고 알리지도 않았지요. 저의 주교서품 25주년에 관해서는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교구 때문에 주교가 있는 것이고 백성이 있어야 목자가 있는 것 아닙니까.
◆농민 단합 절대 필요
-주교님께서 맡으셨던 안동교구는 한국의 대표적인 농촌교회입니다. UR 협상이 타결되면서 농촌 농민들이 커다란 위기를 맞고 있고 농촌을 살리자는 목소리가 교회 안에서도 활발히 일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농촌의 현실을 체험하신 주교님께선 우리 농촌을 살리는 구체적인 방안이 무엇 이라고 보십니까.
▲농촌이 갈수록 어려워질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남을 탓하거나 실망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농민들은 살 방법을 찾고 긍지와 용기를 가졌으면 하는 것입니다.
농촌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은 눈앞에 닥친 과제인데、이를 위해 정부의 도움도 필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농민들 자신입니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연구하자는 것이지요. 우선 유기농업이 한 방안이 되겠습니다. 어느 때보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으므로 오염되지 않은 무공해 농산물을 생산、공급한다면 긍지도 가질 수 있고 살 길도 되리라고 봅니다.
또 하나는 도ㆍ농 직거래에 교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이것은 교회가 꼭 해야 하고、누구보다 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교회 신자들만 잘 살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교회가 먼저 올바르게、바른 정신으로 실천하고 확산시켜 가자는 것입니다. 앞으로 수입 개방은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세계는 어차피 더불어 살 수밖에 없으니까요. 따라서 새 길을 찾고 견문을 넓히는 농민들의 단합과 노력이 참으로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특히 유엔이 정한 가정의 해입니다. 사회、교회를 막론하고 기초 공동체인 가정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교회는 가정의 소중함에 대해 늘 강조해 왔습니다. 오늘날 가정의 문제는 서로간에 만날 수조차 없는 상황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대화하고 사랑을 나눌 기회가 상실됐다는 말이죠.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일단 저는「함께 식사하기」운동이 라도 교회가 적극 벌였으면 합니다. 아버지는 돈벌이에、자녀들은 공부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신자들만이라도 깨고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한 가지 아쉬움은 교회가 그동안「낙태」문제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상대적으로「불임수술」이나 부부ㆍ교육ㆍ노인문제와 같은 다른 부분을 소홀히 하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낙태」문제가 덜 중요하다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불임수술에 대해선 교회가 그동안 언급이 별로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와 함께 결혼을 앞둔 남녀를 위한 혼인 교육이나 청소년 성교육、결혼 후의 부부교육 등에도 균형 있는 관심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회 속의 교회 마땅
-21세기가 몇 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2천년대 복음화」를 향한 노력들이 교회 내 곳곳에서 전개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2천년대 복음화를 준비해야 할런지요. 복음화의 요체는 무엇입니까.
▲우선 지적하고 싶은 것은 최근 몇 년간 전국 평협이 추진하고 있는 사업들이「사회 속의 교회、신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하고 반갑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지나치게 교회 내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이 폐단 아닌 폐단이었지요.
복음화는 세상을 예수님의 눈으로 바꾸어가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 세상을 살고 있는 분위기를 바꾸어가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선 개인적인 신심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물론 그것도 필요하지만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각자의 신앙으로 가정을 변화시켜야 하고 나아가서는 사회 속에서 제 몫을 다해야 합니다. 문화 복음화 혹은 사회 복음화라고 할까요.
이런 의미에서 신앙은 하나의 도전입니다. 평생을 두고 계속되는 도전이고 선택입니다. 신자로서의 삶이 무엇입니까. 바로 주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닙니까. 내 안에 계신 주님으로부터 내적인 힘을 얻고 있기에 타인이 상상도 못하는 변화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9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30주년 세미나에서 주교님은 토착화 문제를 포함해서 한국 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우리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정말 신앙의 눈으로 똑바로 보자는 것이 토착화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가정문제ㆍ환경문제ㆍ농촌문제ㆍ심성 등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 모든 현실들을 복음화하는 것이지요. 오늘 이 시점에서 사람들이 느끼고 있고、당하고 있고、찾아야 하는 그 문제들을 신앙의 눈으로 보고 예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해결하고 예수님과 한 뜻이 되어 산다는 것이 토착화거든요. 그래서 토착화 문제와 복음화는 하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면에서 한국 교회의 전례ㆍ음악 등 많은 부분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 문제점은 4가지 정도로 지적하고 싶습니다. 첫째가 신심ㆍ영성문제입니다. 사적 계시와도 관계되는 부분이겠지요. 외국 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수용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심성에 맞는 확고한 믿음을 뿌리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가「없는 이들을 우선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특별히 강조하고 싶습니다. 한국 교회는 그동안 엄청난 발전을 하면서 신자도 많아졌고 돈도 풍부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외적인 것이 중요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전 건립이 대표적인 예지요. 필요한 부분도 있겠지만 너무 돈이 많이 들고 화려합니다.
◆성전 건립 너무 화려
교회가 없는 이들을 위한 각종 복지사업을 벌이는 것도 좋지만 없는 이들의 교회,「그들이 우선 대우를 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근로자ㆍ농민 등 평범한 사람들이 교회에서 멀어져가고 있어요. 신앙생활도 돈과 시간이 있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것처럼 인식되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이 교회와 가까워질 가능성은 갈수록 사라져가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누구의 탓이 아닙니다. 바로 교회가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자기의 삶과 너무 동떨어진 교회의 모습은 결국 이들을 냉담으로 밀어 넣고 맙니다. 앞으로 이 문제는 한국 교회에 큰 도전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는 아까 말한 사회 복음화의 문제이고、마지막이 세계 교회 안에서의 한국 교회의 역할입니다. 즉「받는 교회」에서 이제「나누는 교회」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죠.
-올해 창간 67주년을 맞는 가톨릭신문에 충고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글쎄요. 그동안 우리 사회、교회 모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잘 대처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무엇보다 진심으로 용기를 가지라고 말씀드리고 싶고、정말 순수하게 용기를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지금으로선 다른 특별한 계획은 없습니다. 신부님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은 바람뿐이지요. 그동안 영성 지도、피정 지도를 많이 했지만 가장 기쁘게 하는 피정은 사제 서품 피정과 신부님들을 위한 피정입니다. 그분들의 어려움을 함께 하고 힘이 되어주는 것이 저의 희망입니다.
-주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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