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이혼. 우리 사회에서 이혼문제는 이제 새삼스러운 주제가 아니다. 그러나 최근 수 년 새 뚜렷한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결혼 2~3년 된 가정의 파경이나, 20~30대 초반 부부의 이혼 증가 추세는「이혼」문제를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방치할 수만은 없게 만들고 있다. 가정 파탄으로 인한 결손가정 문제 등 또 다른 사회문제를 야기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UN이 정한 세계 가정의 해와 곧 다가올 5월 가정의 달을 맞으면서 우리 사회의 급증하는 이혼과 버려지는 결손가정 아이들의 문제를 진단해 본다.
◆급증하는 이혼
작년 한 해 동안 한국 가정법률상담소(소장=이태영)에 접수된 총 9천3백8건의 상담 건수 가운데 직접적인 이혼에 관한 것이 4천4백73건(48%)으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이「부부관계」가 2천65건(22.2%)으로 나타나 부부관계 역시 결국엔 이혼문제로 귀착된다고 볼 때 전체 상담 건수의 70% 이상이 이혼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이혼을 상담해오는 연령도 남녀 모두 30대가 가장 많아 20ㆍ30대를 합하면 그 수치 역시 70%를 넘어서고 있고,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기간도 1~4년까지가 21.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대법원이「91 사법연감」용으로 집계한 자료는 더욱 충격적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90년 한 해 동안 재판상 혹은 합의에 의해 이혼한 부부는 총 5만7천6백45쌍. 한해 결혼하는 부부가 40만 쌍 내외이니 7쌍 가운데 1쌍이 이혼하는 셈이다. 이 중에 20대 부부의 이혼이 전체의 45%로 가장 많았고, 30대가 39.7%로 다음 순이었다.
또 경제기획원이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말까지 조사한 것을 봐도 이혼율이 전체 결혼부부의 4.7%에서 10.5%로 2배 이상 크게 늘어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서울 가정법원이 집계한 91년도 서울지역 이혼부부 4천5백14명 가운데서도 20~30대 층 부부가 전체 이혼부부의 70% 이상을 차지했을 뿐 아니라 결혼생활 5년 내의 부부가 36%나 차지했다. 흔히「냄비사랑」으로 일컬어지는 신혼 파경이 늘고 있다는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이혼이 날로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전히 배우자의 부정이나 배우자의 폭행 등 부당한 대우가 가장 많이 지적되지만 근본적으로는 과거 피해자로만 여겨지던 여성들의 자의식이 크게 변화됐다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 상담위원은『과거엔 남편의 부정이나 폭력 때문에 못 살겠다고 상담을 하면서도 선뜻 이혼은 생각지 않고 하소연만 했었는데 요즘엔 여성들이 먼저「이혼할 방법이 없느냐」고 물어온다』며 변화된 상황을 설명했다.
여성들의 이러한 인식 변화는 사회적으로 여성의 지위와 경제적 능력 향상이 주요인으로 지적된다. 즉 인생을 남편 밑에서 얽매여 사느니보다 새롭게 재출발하기 위해 이혼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말이다. 결혼 뒤에도 계속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이 늘어나면서 이혼 후의 경제적 문제, 사회적 편견 때문에 이혼을 망설이는 여성들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혼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이 관대해졌다는 증거다.
서울 가톨릭사회복지회 나눔의 전화 담당자 이현숙(헬레나)씨는『예전엔 이혼하면 친정에서도 받아주지 않았지만 요즘은 친정에서 오히려 이혼을 권유하는 상황이다』면서 여성의 경제적 자립도가 충족되고 이혼에 대한 사회적인 통념이 변화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혼을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꼽혔던 자녀문제에 대한 인식도 크게 달라져,『남편은 버려도 자식은 못 버린다』는 것이 전통적인 인식이었으나 요즘엔『참고 사느니 차라리 떨어져 사는 것이 자식들에게 더 교육적이기 때문에 이혼하겠다』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경우는 불화를 해소하려 노력하기보다는 자녀가 생기기 전에 이혼하려고 하는 경향이다. 주로 결혼 1~2년 안에 파경을 맞는 경우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혼 파탄으로 인한 최대의 피해자는 이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들이라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버려지는 아이들
예전 같으면 이혼할 경우 서로 자녀 양육권을 주장, 이를 둘러싸고 법정에서 대립하는 것이 상례였으나 요즘엔「아이를 맡을 수 없다」며 양육을 거부하는 믿기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 부모는 이혼 후에 자신들의 생활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자녀들을 복지시설이나 입양 기관에 맡기는 비인간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고, 이러한 극단적인 부부 이기주의가 자식들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고 있다며 관계자들은 개탄한다.
더구나 부모의 사망이 아닌 가출이나 이혼에 따른 고아아닌 고아가 된 아이들은 사회의 냉대와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마음의 상처로 말미암아 자칫 비행청소년화 할 우려가 큰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비행청소년 선도 교육기관인 서울 시립 동부아동상담소에 보호 중인 아이들 가운데 90% 이상이 이처럼 이혼 등을 이유로 가정이 파탄된 결손가정 자녀들이다. 이곳 책임자 조영숙 수녀는『부모의 이혼이나 다른 이유로 어릴 적부터 깊은 상처를 받은 아이들은 도박, 난폭한 기질, 우울 증세를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면서 불행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결국 어른이 되어서도 불행한 가정을 갖게 되는 사례가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국내 대표적인 입양기관인「성가정 입양원」(원장=조용원)의 경우도 미혼모의 아이를 제외한 이혼이나 가출로 인해 버려지는 아이들이 매월 평균 1~2명씩 들어오고 있다. 물론 이곳에서 좋은 가정을 만나 입양된다면 일차 목적은 달성한 것이지만 친부모에게서 버림받았다는 엄연한 사실은 그 아이가 평생 동안 지고 가야 할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작년 4월 보사부가 집계, 발표한 자료에서 전국 2백87개 아동복지 시설에 수용된 2만3천여 명 가운데 90%가 살아있는 부모에 의해 맡겨진 것으로 드러난 사실은 이 같은 우리 사회의 비인간화된 현실을 여실히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그 중에는 미혼모라든가 부양 능력이 안 되는 극빈가정 자녀들이 상당수 있지만 부모의 이혼이나 가출 등으로 인한 결손가정 아이들이 42%나 차지했다.
역시 보사부가 최근 5년간「소년소녀가장 발생 원인별 현황」을 조사한 것을 보면, 전체 소년소녀가장 수는 큰 변화가 없는데 비해 88년 소년소녀가장 6천9백2명 중 부모의 이혼이나 가출, 재혼으로 인한 가장 수는 전체의 34%인 2천3백51명이었으나 91년에는 전체의 41.6%인 2천8백71명으로 늘어났다.
또 한국어린이재단이 지난해 초 서울 시내 소년소녀가장 2백50세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더욱 두드러져 전체의 10%인 25세대만이 부모가 모두 사망한 경우였고, 나머지 86%는 부모가 생존해 있으나 이혼이나 행방불명, 가출 등으로 소년소녀가장이 되었다는 것.
현재 초ㆍ중ㆍ고학생 70여명이 생활하고 있는 성모자애보육원(원장=차영자 수녀)이나 부랑아동 보호시설인 광명시 철산동 나눔의 집(지도=김정수 신부), 또 13세 미만의 결손가장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는 안양 아동상담소(소장=심량금) 등에도 이렇게 버려지는 아이들이 각 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얘기다. 심량금 아동상담소장은『이혼 전 별거 상태나 엄마의 가출로 인해 버려지는 아이들이 전체의 80%에 이른다』면서『5~6년 전부터 이미 이혼 후 자녀를 맡지 않으려는 현상이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갈수록 늘어나는 이혼가정. 그로 인해 버려지는 아이들, 어디에 원인이 있으며,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가.
가족문제 전문가들은 서구화 개인화 풍조의 확산으로 말미암아 이혼이 계속 증가할 것임을 감안할 때 일차적으로 전통적인 가정 윤리관을 재확립하는 일과 결혼 전 배우자를 선택하는 과정에서부터 보다 철저한 사회의식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결혼을 지나치게 관념적이거나 막연한 호기심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결혼생활 중에 부닥칠 수 있는 어려움에 대해 보다 신중하게 접근할 기회를 제공해 주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사회적으로 관련 기관에서 이에 관한 교육을 확대 실시함과 동시에 각 종교 단체에서 펼치고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과도 유기적인 협력체제를 이루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청소년 시기부터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길러주고, 결혼과 가정에 대한 건전하고 분명한 윤리ㆍ가치관을 확립시켜 주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함께 부모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버려지는 기아ㆍ미아들을 줄이기 위해 부도덕한 부모들에 대한 사회의 감시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고 관계자들은 강조하고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