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 수도자는 물론 본당 봉사자들에게도 전례 시기 중 가장 바쁘다는 사순과 부활을 무사히 지냈다. 이제 한숨 좀 돌리나 했는데 가만 보니 코앞에 다가온 5월엔 성령강림대축일, 성모의 밤, 견진성사 등 행사가 또 줄줄이 있다.
거룩한 전례에 몸과 마음으로 동참하는 기쁨이야 말할 수 없지만, 직장과 집안일을 병행하며 본당 행사까지 잘 치러낸다는 게 사실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 쉽지 않음 때문에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하느님께 의지해야 하는데 눈앞에 닥친 일에 치중하다 보면 어느새 기도는 뒷전일 때가 부지기수다.
몇 해 전 주일학교 여름 캠프를 준비할 때의 일이다. 두 달 넘게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준비했는데도 여전히 부족한 듯한 불안감 때문에 마음은 점점 초조해지고 있었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어쩌나, 캠프에서 아이들이 다치진 않을까, 프로그램이 잘 진행되지 않으면 어쩌지…. 내일이면 출발인데 불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출발 전날 미사는 봉헌해야지 하는 생각에 교사실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성당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제대 한쪽에 준비된 성체현시대. ‘아, 오늘이 첫 목요일이구나.’
부끄럽지만 이 한마디는 난처함이었다. 물품 최종점검이며, 집안일 준비, 개인 짐 꾸리기까지 미사 끝나고 해야 할 일이 태산인데 성시간까지 해야 하다니.
급격한 피로와 갈등 속에서 결국 성시간이 시작됐다. 그런데 불이 꺼지고 체념하듯 눈을 감는 순간 말을 걸어오시는 예수님.
‘캠프 가기 전에 이렇게 조용히 만나고 싶었단다. 그동안 준비하느라 힘들었지.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해 줄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사죄와 안도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집에 오신 예수님을 덩그러니 모셔 놓고, 시중드는 일에만 분주했던 마르타도 사랑하셨던 성심이 내게로 뭉클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유능한 봉사자가 되고 싶은 나의 교만은 지금도 불쑥불쑥 나를 초조하게 한다. 하지만 이제 그 초조의 절반쯤은 예수님께 맡길 수 있게 되었다. 당신 구원 사업에 쓰일 능력보다는 얼마나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지에 더 관심이 많으신 예수님께서 내게 바라시는 게 무엇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게도 주어져 있었던 마리아의 ‘좋은 몫’. 늘 부러웠던 그 몫을 이제는 나도 “놓치지 않을 거예요.”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