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지금 예루살렘을 향한 마지막 등정길을 계속하고 계신다. 그 길은 아무도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예수께서 세상의 구세주임을 온 세상에 알리고 예루살렘에 새로운 뜻을 부여하게 될 여행길이었다. 도중에 제자들에게는 세상 권력과 예수께서 가지신 권력과는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세계의 권력이라는 것과 제자들이 앞으로 맡게 될 직능에 힘과 능력을 다 쏟아야 한다는 달란트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이때는 예수께서 예리고를 지나가시던 때였고 예수의 일행은 여기서 예루살렘으로 직행하려던 참이었다. 요한복음서는 과월절 엿새 전이라고 했는데 과월절 축제는 금요일과 토요일 사이의 밤에 행했으니까 오늘 기름 바른 이야기의 날짜는 과월절 전 토요일이 된다. 예리고에서 일어났던 일들과 제자들과의 대화 등으로 미루어 보아 예리고를 떠나 몇 시간을 못 가서 날이 저물었을 것이다.
일행은 저녁 먹을 일과 하룻밤을 지낼 일이 과제로 남아 있었다. 이들은 베타니아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곳에는 며칠 전 주께서 죽은 라자로를 소생시켜 주신 마르타의 집이 있다. 그런데 저녁식사는 그곳의 시몬이라는 사람의 초대로 그 집에서 식사를 하시게 되었다. 마르코 복음서에 따르면 이 사람은 문둥병자 시몬이라고 동네에서 불리는 사람이었다.
문둥병자는 사람들과 섞여서 살지 못한다는 율법을 생각하면 이 사람은 아마도 예수의 기적으로 치유를 받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 석상에는 역시 예수의 은혜를 입은 라자로가 있었고 그의 자매 마르타가 전지 시중을 들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으로 미루어 보아 시몬이라는 사람은 예수로 인하여 마르타네 형제 자매들과는 절친한 관계이었음에 틀림없다. 마르타의 남편 혹은 아버지라는 설도 있다(대목 179 참조). 그리고 예수의 일행이었던 제자들도 함께 있었으니 저녁식사는 꽤나 큰 만찬이었다. 이때 오늘의 주인공 마리아가 등장한다. 마리아는 이미 알려진 대로 라자로의 작은 누이동생이고 주님의 각별한 사랑을 받던 여자였다.
이 여자는 마르타가 식사 시중을 들고 있는 동안 값비싼 순 나르드 향을 한 옥합 들고 들어와서 그것을 깨뜨리고 예수께 붓고 자기 머리털로 문질렀다. 온 집안이 삽시간에 향기로 가득 찼다. 마르코 복음서와 마태오 복음서는 머리에 부었다고 했고 요한복음서는 발에 부었다고 했다. 아마 머리에서 발까지 모두 부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때는 예수께서 식사하시는 때였고, 식사는 유대아 풍속대로 머리를 손에 기대고 팔굽을 세우고 옆으로 누워서 하던 광경을 생각한다면 머리에 기름을 부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여튼 머리에 기름을 붓는 것은 왕을 뜻하는 것이고 발에 기름을 붓는 것은 관습에는 없으나 죽은 시체에 기름을 바를 때 발부터 발라 올라가는 것이 그들의 관습이었다. 하여튼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마리아는 예수의 죽음을 예고하는 행위로 받아들인다면 머리에 부었거나 발에 부었거나 예수의 임박한 죽음을 예고하는 저녁식상이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요한복음서가 전하는 베타니아의 기름 바름 이야기는 루가 복음서가 전하는 기름 바름 이야기(루가 7, 36~38 대목 79 참조)가 거의 같은 표현으로 되어 있어서 학자들 중에는 같은 사건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갈릴래아의 기름 바름이라고 일컫는 루가 복음서의 이야기는 예수의 전교활동 시작에 있은 일이고 요한의 베타니아 기름 바름 이야기는 예수의 활동 끝에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은 사건으로 전혀 다르다.
요한은 첫 번째 기름 바름 이야기를 상기시키면서 두 번째 베타니아에서 기름을 바른 여자를 소개하면서『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주인의 발을 닦아드린 적이 있는 여자였다』고 이미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오늘의 베타니아의 마리아는 루가 복음서가 전하는 갈릴래아의 어떤 바리사이 사람 집에서 예수께 향유를 발라드린 그 유명한 죄녀 마리아와 동일 인물일 수 있다.
성 그레고리오 대교황(6세기) 때부터 베타니아의 마리아, 죄녀 마리아, 그리고 막달라의 마리아는 동일 인물로 취급되어 7월 22일 같은 날에 마리아 한 사람의 축일로 지내는 전통이 생겼다. 이를 뒷받침할 근거도 이를 반대할 근거도 성서에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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