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2월 7일
오늘은「순교자의 모후」꾸리아(캐나다 토론토 한인본당) 회합 날이었다. 성녀 이소사본당(캐나다 에토비코우크)의「그리스도의 모친」쁘레시디움과「승리의 모후」쁘레시디움 순방 결과 보고서를 내고 순방 소감을 전 평의원들에게 보고하였다. 5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순교자의 모후」꾸리아는 완전한 면모를 갖춘 것 같았다.
11월 중순부터 남용욱(스테파노) 단장과 협의해 왔던 인꼴라마리애 파견에 대한 승인을 요청하니 모두들 무슨 얘기인지 납득이 안 가는 눈치들이었다. 처음 있는 일이니 무리는 아닐 것이다. 남 단장의 소상한 설명이 부연된 후 비로소 모두들 이해하고 승인하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레지오 역사상 한인으로서는 인꼴라마리애 단원이 처음 탄생한다는 설명과 대단한 희생이 따르는 1년여 동안의 외지 체류활동임을 누누이 강조하니 평의원 모두가 격려를 해주었다. 그리고 레지아에 보낼 승인 요청서를 영문 타자로 깨끗이 쳐서 최규식 본당 신부님과 나에게 한 부씩 주었다. 이로써 나의 인꼴라마리애 파견은 공식 발표됐다.
지난 9월 7~8일 미국 뉴저지의 체리힐과 9~11일 아틀란틱시티에서 신앙 연수를 끝내고, 9개 쁘레시디움이 정식 창단됐다. 나는 각 쁘레시디움 주회를 돌보기 위해 10일간이나 더 머물러 있어야 했다. 그동안 이곳이 인꼴라마리애 활동의 적지라고 판단, 최홍길 신부님과 상의해『좋다』는 동의를 받아 암암리에 혼자서 추진해 왔었다.
신앙 연수 후 3차례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연기하며 쁘레시디움 주회를 돌보다가 비행기표를 예약하면서 추석인 것을 알았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차례상에 올릴 맛있는 음식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아내는 나의 사과에 겉으로는 이해하는 척했지만 속으론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며칠 지나는 동안 아내의 화는 그런 대로 풀렸지만 인꼴라마리애에 대한 얘기는 꺼낼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매일 같이 집안일을 돕고 그녀의 최대 관심사인 국선도 수련에 동행하는 등 헌신적인 정성을 쏟아 부었다. 꾸리아 회합에서 공식적으로 취급됐고 모든 단원들에게 나의 인꼴라마리애 성공을 위해 기도하라고 공포된 이상 어쩔 수 없다고 하여 겨우 승낙을 받아냈다.
■1991년 12월 21일
오늘은「순교자의 모후」꾸리아 산하 19개 쁘레시디움이 참가하는 연총 친목회의 날이다. 오전 10시 30분 미사로 시작해 오후 5시경에 모든 행사를 마쳤다. 이날 진행을 맡은 나는 매우 바쁘게 하루를 보냈다. 할머니 쁘레시디움들의 단막극은 잘 준비되어 인상적이었고 중간중간에「교본 교리경시」를 실시해 신앙인들의 모임임을 잘 드러내 보였다.
시상과 폐회기도 후에 레지아(캐나다 토론토교구) 간부들과 인터뷰를 가졌다. 지난 12월 13일 개최된 회합에서 인꼴라마리애에 대한 공문을 접수한 후, 나와의 면담 요청이 있어 남 단장으로부터 오늘 오후 5시로 약속해 두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면담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인꼴라마리애 단원은 △쁘레시디움의 활동 단원으로서 풍부한 경험자 △쁘레시디움과 꾸리아의 장부상에 꾸준히 기록돼 있는 자 △가족의 생계를 완전히 해결한 자 △영적 지도자의 추천이 있는 자 등 4가지 자격 요건을 갖춰야 하고 현지 사목자와 평의회와 사전 협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이날의 면담은 만족스럽게 끝났고 곧이어 레지아는 꼰칠리움(레지오마리애 세계본부)에 보고한다는 것이었다. 꼰칠리움까지 보고가 되면, 세계 최강이며 질적으로 최고인 한국 레지오에서도 인꼴라마리애가 탄생하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기쁜 마음으로 콧노래를 부르면서도 한편으론 인꼴라마리애가 구체화되면 내가 과연 무사히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근심이 들어 어깨가 괜스레 무거워졌다. 그러나 나는 항상 그러했다. 적어도 이 정도 해 두면 어쩔 수 없이 끌려가지 않았는가. 나의 나약성을 잘 알기에 항상 이런 식으로 먼저 터뜨려 놓고 뒷수습을 하지 않았던가…
제1차, 2차, 3차 PPC(레지오마리애 외지 순방활동)때도 마찬가지였다. 매사가 그렇게 끌려가면서 비로소 주님의 섭리와 사랑의 돌보심을 깨닫고 늘 감사하며 힘차게 추진하지 않았는가. 어떤 난관과 역경도 극복하고 용맹스럽게 주님의 충성스런 자녀로서 진군할 것이다.
■92년 1월 10일
토론토 레지아 회합 날이어서 국선도 수련을 마치고 아내와 함께 덴포쓰의 레지아 본부로 갔다.
요셉 맥글루드 신부님께서 회합 도중에 우리 부부를 소개하고 공지사항 시간에 인꼴라마리애 단원으로서 나의 성공적인 활동을 위해 모든 산하 쁘레시디움 단원들의 기도를 당부하셨다. 또 신부님께서는 우리 부부에게 특별 강복과 기도, 안수를 해주셨다.
귀가 중에 아내는 무척 마음이 착잡한지 아무 말이 없었다. 레지아는 부부간의 장기간 별거(?)를 원치 않는다고 승인을 보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겠다는 나의 의지를 꺾지 못해 섭섭하고 야속해서인지 아내의 석연찮은 표정과 침묵은 나를 무척 불안케 했다.
토론토 레지아는 꾸리아 창단 때도 승인과정에서 꼰칠리움과 수 차례 공문을 주고 받으며 자기들의 권한을 스스로 포기한 듯한 인상을 줘 나의 집요한 요청으로 결국 승인받게 하더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레지아의 승인만 있어도 문제가 없는데(레지오 교본 370쪽, 6A) 꼰칠리움에 보고하고 승인을 받겠다고 연락하더니 결국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나 난 꼭 승인을 얻고야 말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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