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가져오게 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동기의 하나가 바로 대사문제였다. 우리나라에서 종교개혁에 대하여 다루는 여러 책에는 소위「면죄부」로 소개되어 있는데 사실 이는 잘못 번역되었다. 원어로는 인둘젠씨아(In-dulgentia)로 이 용어는『너그러움, 관대함, 용서』라는 뜻이다. 대사가 종교개혁 당시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그 유래는 오랜 세월을 두고 발전해온 참회성사에서 파생되었다. 루터의 대사논쟁에 대하여 보기 전에 대사가 통용된 유래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1백50년경에 로마에서 저술된 헤르마스의「목자」에 의하며 세례 이후 범죄했을 경우 단 한 번만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2~3세기에 교회는 박해 동안 배교했다가 참회한 신자들에게 대한 엄격주의를 배격하고 교회와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4세기부터는 성 목요일에 속죄자가 교회와 화해하는 공적 고백이 시작되었다.
6세기부터는 아일랜드의 수도자들이 사제에게 개별적으로 죄를 고백하고 죄의 경중에 따라 속죄의 벌을 받는 방식이 일부 열심한 평신도들 사이에서도 선행하기 시작하였는데, 이제는 언제라도 자주 고해성사를 볼 수 있게 되었다. 9세기부터는 비밀고해성사제도가 정착되어 먼저 죄 사함을 받고 후에 속죄하도록 되었다.
1063년 알렉산더 2세 교황(1061~1073)과 1095년 우르바노 2세 교황(1088~1099) 때부터 대사가 통용되기 시작하였다. 즉 초기의 공적인 속죄행위와 중세 초기 개별적인 속죄행위를 대신할 수 있도록 대사가 고해자들에게 허용되었는데 교회와 고해신부가 권고하는 선행을 이행하는 조건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법을 감면하고 죄사함을 받도록 일정한 의무를 부과하였다. 죄의 용서와 속죄는 다르다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속죄는 죄 사함을 받고 이에 상응한 벌을 받아들여 보속하는 것이다.
12~13세기 십자군 전쟁시대에 대사가 좀 더 광범위하게 허용되기 시작하였다. 즉 십자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다가 죽으면 그의 모든 죄와 벌이 용서받는 전대사가 제공되었다.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점령된 예루살렘 성지 회복을 위한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오랜 세월 동안 전대사를 받는 유일한 길이었다.
이 전대사와 함께 일 수와 연 수에 상응한 벌이 면해지는, 소위 한대사가 배려되었는데 이는 연옥 영혼들의 벌을 감면하는 기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죄의 경중에 따라 며칠 혹은 몇 년 동안 치루어야 할 속죄의 양에 상응한 대사를 말한다. 십자군 전쟁에 참여할 수 없지만 재정적으로 십자군들을 도와주는 자들이나 교회 건축에 공헌한 사람들, 일정한 성지순례를 이행한 자들이나 어떤 신심행위를 마친 자들 혹은 자선행위를 수행한 자들이 이 한대사를 받을 수 있었다. 성지순례는 이슬람 교도들의 예루살렘 점령으로 그곳을 갈 수 없는 동안에는 성년 동안에는 로마의 대성당들을 참배하여 기도하거나 아씨시의 포르지운콜라(Porziun-cola) 성당을 참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한대사의 적용 방식에 있어서나 이에 대한 강론 등에서 남용이 발생하면서 1215년 제4차 라떼란 공의회에서는 한대사의 적용을 제한하였다. 1250년경에는 죽은 자들에게도 대사를 적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고인의 명복을 빌고 고인에게 자비를 내려 주시도록 간청하는 방식이었다.
1300년 2월에 보니파시오(Bonifatius) 8세 교황(1294~1303)이 처음으로 로마에서 전대사의 은사를 받을 수 있는 성년을 발표하였다. 이 전대사를 받기 위해서는 1년 이내에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을 순례하고 고해성사를 보며 참회해야 했다. 그는 매 1백년마다 전대사를 받을 수 있는 성년의 해를 선포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매 25년마다 혹은 특별한 경우에 선포하고 있다
14세기 말과 15세기부터 재정적인 동기로 대사의 허용과 이에대한 설교에 남용의 징후가 눈에 뜨이게 드러났다. 물론 교회의 대사신학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를 적용하는 데 있어서 세속화된 일부 교직자들이 자기 개인적인 이익을 위하여 이를 악용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불미스러운 상태가 루터의 종교개혁 당시까지 계속되었다.
1518년 11월 9일 레오 10세 교황(1513~1521)은 대사의 남용을 인정하면서 대사의 원칙을 재확인하는 칙령을 발표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와 그 이후의 여러 개혁 조치 가운데 대사를 어떠한 형태로든지 재정적이거나 자선적인 헌금에 연결시키지 않도록 규정하면서 이를 어길 경우 파문을 당하도록 규제하였다. 1967년 1월 1일 바오로 6세 교황(1963~1978)은 대사의 통용을 더욱 단순화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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