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8일 목요일 선교사-그는 누구인가?
주교님은 다시 산티아고로 떠나시고 나만 남았다. 하루 종일 참지 못할 정도로 결리던 왼쪽 어깨의 고통이 밤이 되자 씻은듯이 사라지고 그대신 이름 모를 불안이 엄습해왔다. 며칠동안 보고 들은 것들이 한꺼번에 눈앞에 아른거리고 귀를 울려서 잠이 오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선교사로서의 나는 누구이며 무엇하는 사람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마침 이곳 도서실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온종일 어깨의 통증을 잊기위해 읽었던「성부께서 보내신 사람」.(Sent from the Father) 이라는 책내용이 무겁게 머리에 남아있다.
저자는 호세 콤블린이라는 벨기에 신부인데 이 신부 역시 본교구를 떠나 칠레에서 선교하는 분이다. 호세 신부는 이렇게 주장하고있다. 『선교사는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된 사람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원래 선교사이다. 그리고 선교사는 자신의 일을 하는것이 아니라 자기를 보내신 분의 일을 한다. 따라서 선교사는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은 나를 보내주셨다.』(요한 7,28: 참조-요한 1,11: 5, 23,24ㆍ30ㆍ37ㆍ38: 6, 38ㆍ39ㆍ46: 12, 49ㆍ50: 15, 15: 17ㆍ3ㆍ8,18,25) 『나는 아버지께서 맡겨주신 일을 한다』(요한17,4: 참조 요한 4,34: 5,17: 5,19-21: 9,1-6: 10,25,32ㆍ37-38) 선교사이신 예수님의 말씀이요 자기표명이다.
정말 나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그대로 나의 것으로 삼고 있는가? 아니면 삼을 수 있는가? 자신이 없기 때문에 나는 지금 불안한 것이다. 만일 내가 하느님께로부터 왔다는 철저한 자각이 있다면, 만일 내가 나의 일은 완전히 포기하고 하느님의 일만을 행하기로 결심이 서 있다면 나는 지금 이렇게 며칠동안 보고들은 것들 앞에서 자신없이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묻고 또 청하였다. 『하느님 아버지, 정말 저를 이곳에 보내셨습니까? 이곳에서 제가 할 일을 뚜렷하게 보여주십시오.』하느님께서는 조용한 가운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했다. 『나의 대답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그 분량만큼, 그리고 그때에 맞추어 천천히 조금씩 말해주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 밤에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내가 어느 곳에 있든, 어떤 일을 하게되든 그 곳이 아버지께서 보내신 곳이요, 그것이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일이라 믿고 그 처지에서 정성을 다하면서 기쁘게 살면 나는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라고. 기쁘게 사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실 아버지를 상상하면서 나는 잠을 이룰 수 있었다.
만남 : 한국 여자 어린이를 만났다. 태어난지 6개월만에 미국인 가정으로 입양된 어린이인데 (양)부모는 루터교 목사부부로 페루의 산악지역에서 사는 원주민들에게 선교하기 위해 그들의 말인 케추아 말을 배우고 있다 한다. 아이는 튼튼하고 티없이 맑게 자라고 있었다. 물론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메리놀지부에서는 이렇게 가톨릭 선교사-신부, 수녀, 평신도-들뿐 아니라 개신교 선교사들도 많이 만날 수있었다)
데이비드 수사와의 만남 역시 인상에 남는다. 이 수사는 침보떼라는 시골 도시의 공립학교에서 영어와 종교를 가르치고 있고 젊은이들의 건전한 성장을 위해 온갖 스포츠-심지어는 가라데, 리듬체조, 고유무용도- 배워서 학생들과 어울린다는데 이번 주일에「리마」에서 열리는 전국마라톤대회에 출전하려고 시골에서 올라왔다고 했다. 물어보나마나 그는 자기의 젊은 제자들을 위해 이 경기에 참가할 것이다
나보다 더 약하게 생긴 이 수사님이 무사히 완주할 수 있기를 마음 속으로 기원했다. 선교사의 앞길은 불투명한 것이다. (미국에서 온 이 수사 역시 자기가 마라톤 선수가 될 것을 꿈에라도 생각해 보았을까?) 정말 모험과 위험 가득한 여정이다. 다알고 떠나는 길은 선교사의 길이 아니다. 이런 인식이 지금 나에겐 너무 부족하다.
한국의 동창신부들은 나에게 쓸데없는 모험심은 그만두라면서 나의 남미행을 말렸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그 많은 선교사들과 비교할때 나는 모험심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이다.
말씀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분은 나다-라고 하시는 그분이다」라고 일러라』(출애3,14)
모세 역시 야훼 하느님의 파견명령을 받고 대단한 혼란에 빠지고 주저하였다. 그러나 그를 보내신 분이 야훼 하느님이시기에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온통 새롭게 한 출애굽(Exodus)-해방 (Pascha) 을 이룩할 수 있었다. <끝>
<편집자주>
주소는 세 신부(방의성ㆍ김윤섭ㆍ정승현) 모두Apdo.#22009 Tlalpan 14000 Mexic-o,D.F.입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