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부 주일학교 교사 시절,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아마도 “기도 손”일 것이다.
아직은 미사 시간이 길고 힘들기만 한 아이들. 의자에 닿을 듯이 엉덩이를 쭉 빼고 손가락부터 다리까지 비비 꼬며 서 있기가 일쑤다. 그럴 때 슬며시 다가가 “기도 손” 하고 속삭이면, 화들짝 고사리손을 모으며 배시시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바른 자세를 가르칠 요량보다는 그 웃음과 앙증맞은 기도 손이 귀여워 더 많이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미사 시간, 잠깐 분심이 들었나보다. 멍하게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유아부 꼬마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왜?” 입 모양으로 물으니 요 녀석도 속닥속닥 말을 건넨다.
“근데 왜 선생님은 기도 손 안 해요?”
그때부터 나의 ‘기도 손’은 정형화된, 누가 봐도 기도하는 모습으로 고정됐다. 그저 내 탈렌트에 맞는 봉사라고 생각했던 주일학교 교사가 ‘모범’이라는 무게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성당에 들어설 때 제대에 인사하기, 봉헌예물은 두 손으로 공손하게, 성체 모실 때는 손이 성합보다 높지 않게, 여름에도 맨발로 오지 않기 등등.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들을 가능하면 나도 지키려고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곤 했다.
그런데 난처하게도 나의 ‘기도 손’에 위기가 닥쳤다. 이 대목을 읽는 많은 분들이 코웃음을 웃으시겠지만 마흔이 좀 넘다 보니 움직일 때마다 관절들이 보내는 ‘아고고’ 신호를 받게 된 것이다. 이제는 성찬의 전례쯤 되면 팔꿈치가 저리고 손목이 시큰거려 나도 모르게 움찔움찔 팔을 펴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는 것이다.
‘그래, 예수님도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 원하지 않으실 거야.’
애틋하고 사랑 많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참으로 그럴듯한 유혹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예수님께 드릴 마땅한 선물이 없어, 일부러 고행하며 그 희생을 바쳤던 성인 성녀의 이야기였다. 성인 성녀도 찾지 못한 마땅한 선물이 내게는 더더욱 없을 터이다. 이 작은 고통마저도 마다한다면 나는 예수님 앞에 늘 빈손이겠구나….
보여주기 위한 모범이었던 나의 ‘기도 손’은 이제 예수님께 드리는 작은 선물이 됐다. 비비 꼬고 있을지언정 앉고 싶은 걸 꾹 참고 서 있는 아이들의 마음도 예수님은 선물로 받고 계시겠지. ‘호랑이 로사쌤’의 이러한 깨달음은 주일학교 아이들에게도 선물이 되었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