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책은 흔히 인명 지명 연대 투성이라 죽은 글이기 십상이다. 인물과 사건을 생생히 살려낸 역사책은 가물에 콩 나듯 드물다. 그런데 프랑스 도미니코회 소속 수도자이며 좋은 신학 서적들을 펴내기로 소문난 세르프 출판사 편집장을 역임한 끌레브노 신부가 흥미진진한 세계 교회사 통사를 한창 펴내고 있다. 총 12권 중 이미 11권을 펴냈고 마지막 12권도 곧 마무리할 예정인데, 여기 소개하는 책은 그 첫째 권이다. 대충 서기 전 20년부터 서기 1백년 사이에 있었던 인물과 사건 가운데서 서른 가지를 가려 쉽고 재미있는 수필체로 엮었다. 문헌과 유물을 철저히 검토한 다음 상상력을 조금 동원하여 구수하게 이어가는 이야기들이라 한 번 손에 잡으면 끝까지 읽고 싶은 책이다. 필자는 역사의 흐름을 읽는 눈썰미가 매섭고 말솜씨 또한 미끈하다. 서른 편 중에서 힐렐 율사의 생애(4장), 헤로데 대왕의 최후(7장), 쿰란 유대교 수도자들의 삶(11장), 필립비 교회의 여교우 리디아의 활약(17장), 네로시대의 로마 대화재(24장), 제1차 유대전쟁(25장), 요한 묵시록의 배경(29장)이 단연 돋보인다.
번역은 반역이라는 속담 아닌 속담이 사라질 수 없음인가, 더러 문장이 불통하기도 하고 고유명사의 우리말 표기가 외래어 표기법에 어긋나는 경우도 제법 있으나, 그럭저럭 읽을 만은 하다. 깔끔하게 번역했더라면 유홍준이 지은「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비슷하게 인기가 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신학연구소ㆍ6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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