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천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마음으로서 어찌 감히 천주를 공경하고 수계하여 구령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천주교를 봉해하는 일」이란 말뜻을 지닌 봉교는 신앙 초기부터 한국 가톨릭 교회 용어로 정착돼「천주교를 믿고, 지키는 것들을 몸소 받들어 행함」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돼왔다.
천주교를 행함에 따른 자전적 신앙 고백록인「봉교자술은 김기호(요한ㆍ1824∼1903)가 1901년 3월에 저술한 책으로 자신이 천주교에 입교 영세한 1854년부터 1901년까지 47년간에 걸친 신앙 및 전교활동을 회고, 기록한 회고문이다.
「봉교자술」은 한국 가톨릭 교회사에 있어서 스스로의 신앙 행적을 후대에 남겨 표본이 되도록 의도한 순교자들의 옥중서한 등 몇 안 되는 자서전적 기록물 중에서도 1856년부터 190년까지 병인박해 전후의 시기와 종교 자유의 시기에 걸쳐 반세기 가까운 교회의 역사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은 귀중한 서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봉교자술」은 또한 사료적 가치와 함께 저자 개인의 신심을 이해하고 연구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15세 어린 나이로 진시에 합격 진사가 돼 신동 소리를 듣던 김기호는 누구의 권면도 없이 스스로 천주교에 입교할 것을 결심, 순교자 홍봉주(토마스)를 찾아가 교리를 배워 성인이 된 베르뇌 장 주교에게 세례와 견진을 받았다
김기호는 천주학쟁이로 고향과 친척으로부터 축출 당했지만 병인박해의 와중에도 장 주교를 도와 오직 전교에만 힘썼다. 장 주교와 남종삼 성인의 순교를 직접 목격한 후 전교회장, 명도회장을 역임하면서 리델, 블랑, 뮈텔 등 세 분 주교의 복사 노릇을 마다하지 않았던 김기호는「봉교자술」외에 교리문답 책인「소원신종」, 신심 묵상서인「구령요의」, 천주가사「성당가」 등을 저술하고「성정직해」를 번역해 교회 내 인재로 칭송 받았다.
「봉교자술」에서 하느님께 선종의 은혜 주심을 감사하고 착하게 죽을 수 있는 은혜 주심을 간절히 기구하는 김기호는 후손들에게 "예수 성체신심 및 성심을 공겸하는 규칙을 정해 구령사업에 힘써 나갈 것"을 당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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