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아침 등굣길, 앞에 가는 차가 느릿느릿 속을 썩인다. 두 아이를 등교시키고 출근해야 하는 바쁜 마음이 앞차에 대한 원망으로 쏟아지려는 찰나, 언뜻 보이는 앞차의 운전자. 머리가 하얀 어르신이다. 가만 살펴보니 번호판도 초록색일뿐더러 차종도 정말 오래된 구형이었다. 얼핏 보고는 미처 몰랐을 정도로 깔끔한 외관을 보니 정말 아껴서 타셨구나 싶다. 오랜 세월 어르신에게는 좋은 일, 궂은일의 동행이었으리라.
금전적 이유이기보다는 차에 담긴 추억들, 그 소중한 의미들 때문에 수많은 빵빵거림을 감수하면서도 낡은 차를 그대로 가지고 계셨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니 속을 태우던 느릿한 속도마저 훈훈해진다. 새로운 물건, 새로운 방식에 대한 욕구와 동경으로 많은 것이 쉽게 버려지고 바뀌는 요즘이기에, 의미를 두고 오래오래 아끼는 마음이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매일매일 새로운 것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소위 ‘구식’으로 치부되는 오래된 것들. 그런데 이제는 물건뿐이 아닌 것 같다. 전통, 덕목, 예의범절처럼 보이지 않는 가치들까지 함께 ‘구식’으로 싸잡히고 있는 건 아닌지, 때로는 나 역시 그런 풍조에 휩쓸려 가고 있는 건 아닌지 가끔 걱정된다.
어느 날 아무도 없는 성전에서 성체조배를 하고 있을 때였다. 덜거덕 성당 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나더니 타박타박 신발 소리가 좀 이상하다. 곁눈으로 살짝 보니 우리 구역 최고령 어르신이셨다. 무릎이 안 좋아 신발 소리가 무거웠던 것이다. 그렇게 들어오신 어르신은 성당 중앙 통로를 걸어 제대까지 나아가셨다. ‘아이고 어르신, 가운데 통로로 가시면 안 되는 건데….’ 속으로 웃음이 나는 걸 꾹 참으며 다시 조배에 집중하려는데 갑자기 어르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보니 제대에 큰절을 올리느라 무릎을 꿇으신 것이다. 아픈 무릎으로, 차가운 맨바닥에서, 그것도 세 번이나 정성스레 절을 올린 어르신은 그제야 매번 당신이 앉던 자리로 가서 앉으시는 것이었다.
어릴 적 배우신 ‘천주 공경’의 예절이 그분께는 꼭 지켜야 할 무엇이었기에, 이제는 아무도 하지 않을지언정 꿋꿋이 지키고 계신 것이리라. 그러고 보니 나는 하느님께 나아가 무릎을 꿇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겸손과 순명의 표시로 그동안 무엇을 드렸을까. 장궤틀 있는 성당이 요즘엔 별로 없어서라고 핑계를 대기엔 소홀했던 나 자신을 내가 너무 잘 안다.
구식이고 고루한 것 같지만 이어가야 할 것은 분명 있다. 전통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장인’이나 ‘명장’으로 TV에 소개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것이 단순한 절차나 형식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이 담긴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점점 간소화되고 느슨해지는 신앙생활을 한 번 더 돌아보고 다잡아야겠다. 언젠가는 나도 ‘은빛 어벤져스’에 합류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