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처음으로 성직자가 일제 강점기 교회의 모습을 민족적인 시각에서 반성적으로 고찰한 책을 펴내 화제가 되고 있다.
빛두레 출판사(대표=김병상 신부)가 3·1운동 75주년을 기념해 펴낸 「민족과 함께 쓰는 한국 천주교회사」(문규현 신부 지음)에는 한국 교회의 창설부터 1945년 해방까지를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는 교회 창설이 있기 전 우리 민족의 상황과 더불어 한국 교회의 창설을 자주적 신앙 공동체의 태동으로 규정하고 가톨릭교회의 팽창 과정을 유교 봉건체제와의 충돌, 조선교구의 설정과 박해, 일제하의 교회 등 교회사를 당시 우리 민족의 사회 상황과 맞물려 쓰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는 1910년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후 봉건왕조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던 가톨릭교회가 일제의 조선 합병에 대해서도 아무런 거부감 없이 순응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일제하 가장 큰 민족 운동이었던 3·1운동과 그에 참여한 교인들에 대해 교도권은 단죄의 입장을 고수했다고 밝히고 있는 이 책은 계속해서 이와 같은 교회의 태도가 일제하의 교세 신장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 근거로 한일합방 당시 한국 교회는 7만3천5백17명의 신도수와 높은 신자 증가율을 보인 반면 한일합방 이후 총독부가 신앙의 자유를 선포하는 등 교회의 지속적인 발전이 예견됐으나 1910년 한일합방 이후 1919년 3·1운동에 이르기까지 신도의 연평균 증가율은 2.10%로서, 개화기의 증가율 6.98%와 비교해 볼 때 현격하게 둔화됐다고 제시하고 있다. 즉 민족의 고난을 외면한 교회를 민중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이 밖에 이 책에는 「호교론의 그늘 아래 묻힌 가치, 민족」 「반외세와 반봉건 민중운동의 뒤안에서」 「일제하 민족운동과 교도권의 갈등」 「신사 참배, 이단인지 애국심인지」 「교회에 드리운 대동아 공영의 어두운 그림자」 「교회의 애국단체와 그 지도자들」 「파시즘과 손을 잡은 교회의 반공주의」 등을 당시의 사료를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중 「신사 참배, 이단인지 애국심인지」에는 신사 참배를 둘러싸고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고백인 하나이신 천주를 고백하라는 교리와의 갈등을 시대별로 설명하고 있다. 특히 1930년 일본 천주교회의 신사 참배 허용을 전후로 조선 천주교회의 입장을 당시 신문 사설 사료 등을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함께 하는 글」에서 함세웅 신부는 “주교에 대한 순명 때문에 불타는 민족애와 조국애가 마치 잘못된 것인 양 사죄를 청해야 했던 모순과 비상식을 살아왔던 시기가 일제하의 우리 교회”라고 고백하고 “올해의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 사제단의 창립 20주년을 맞아 한국 교회의 부끄러움 과오를 민족 앞에 고백, 분단의 벽을 부수고 민족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새롭게 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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