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절이 가까와지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시어 성전을 정화시키십니다. 과월절은 유대인들이 에집트에서 탈출한 것을 기념하는 해방 축제로서 대개 4월 중순경에 거행되었는데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반경 30㎞ 안에 있는 성년 남자들은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했습니다.
이 축제는 그들에게 가장 큰 명절로써 타국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도 이날만은 가급적 고국에 돌아와 참여했기 때문에 신학자들의 추정에 의하면 그날에 약 2백만 명의 유대인이 모였다 하며 또한 그때 잡혀 죽은 양만해도 30만 마리 가까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장사꾼들은 대목을 보느라고 동물의 값을 턱도 없이 올려 받아 폭리를 취했으며 성전에 바쳐야 하는 세금도 외국돈으로는 할 수 없기 때문에 환전상들의 횡포도 아주 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성전의 부조리를 타파하신 것입니다.
다른 복음에 보면 본래 「성전 정화」 사건은 주님의 수난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즉 당신이 잡히시기 전에 먼저 성전의 부패와 부조리를 척결하시고 그리고 당신 자신을 깨끗한 희생 제물로 봉헌하시어 세상과 인류의 죄를 정화시키십니다. 하느님의 집은 깨끗해야 합니다. 결코 세상의 악으로 오염되어서는 안 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 정화된 우리도 거룩하고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만일에 우리가 더럽혀져 있다면 정화시켜야 합니다.
오늘 1독서(출애 20, 1~17)에서는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을 주시는 내용입니다. 이 십계명은 이스라엘에 있어서 종교와 도덕、신앙과 윤리의 표준이 되는 일종의 헌장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의 우리에게도 삶의 가치 기준을 정하는 척도가 되고 있습니다. 즉 십계명에 충실했으면 그는 하느님 앞에 성실하게 산 것이며 시회명의 가르침에 충실치 못했으면 그는 잘못 산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엔 죄를 지으면 속죄제를 드려서 죄 사함을 받았고 오늘에는 고백성사를 통해서 죄의 용서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전은 대체로 3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느님을 경배하는 장소로서의 건물을 말하며, 둘째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암시하셨듯이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시며, 셋째는 바오로사도가 강조했듯이 세례를 받은 우리 각 사람은 바로 성령을 모시는 성전인 것입니다(I 고린 6, 19 참조). 따라서 오늘 말씀에서의 성전 정화는 교회 공동체의 쇄신을 말하면서 동시에 우리 각 사람의 회개를 통한 깨끗한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지금 종교의 마모니즘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마모니즘이란 배금주의로써 종교가 돈과 재물을 우상시 하여 자신의 절대자보다 더 높은 가치에 두는 모순과 어리석음을 말합니다. 만일에 하느님을 섬기는 교회에서 돈을 더 중요시하고 돈과 재물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까지도 은밀하게 거역하고 있다면 그 교회는 허물어야 합니다.
여러 해 전에 들은 얘깁니다만, 종교가 기업화되고 있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신자들이 헌금한 것을 가지고 사채놀이와 아파트 투기를 했으며 빌딩 지어 세 받고 증권에 투자하는 등 아주 장삿길에 들어서서 본래의 종교적인 사명을 망각한 자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오늘 이 시대에 주님이 오신다면 허물어야 할 교회와 절들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그런 식으로 종교가 타락해서는 안 됩니다.
타락이란 것이 그렇습니다. 마귀라는 것이 처음에는 아주 사소한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이 정도야 어떠랴, 이게 다 하느님의 사업을 위해서 하는 것인데 하고 변칙을 하게 되면 거기에 묶이고 옭아져서 나중엔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마귀라는 것은 천사가 타락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보다 훨씬 영특합니다. 그래서 처음에 잘라버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보게 됩니다.
어떤 자매가 슈퍼마켓에서 일했는데 일하다 보면 상한 물건들이 많이 나와서 이런 물건이야 자기가 갖다 쓴다 한들 뭔 죄가 되랴 싶어서 조금씩 물건을 날라다 쓴 것이 나중엔 본격적으로 남의 물건을 허락도 없이 가져오는 도둑질을 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그 자매는 뉘우쳐서 고백이라도 했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의 고질적인 죄를 모르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우리는 사실 여러 가지 면의 문제로 해서 영혼이 더럽혀져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우리 안에 오신다면 이 성전은 허물어야 한다고 우리의 육신을 크게 꾸짖으실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자신을 진실되게 살펴봐야 합니다. 사순 시기는 바로 그런 시기입니다. 부활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과월절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허물기 전에 우리가 먼저 뉘우쳐서 스스로 성전을 정화시키도록 합시다. 이것이 오늘 성서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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