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느님 내 발 끝부터 머리끝까지 성령의 힘으로 비추시어 비둘기처럼 날듯이 춤을 추게 도와주소서”
우리나라 중요 무형문화재 92호로 지정된 태평무 이수자 이명자(골롬바ㆍ서울 혜화동 본당ㆍ52세)씨가 공연 전 드리는 기도다.
한국 천주교회의 최초의 순교자 이승훈(베드로)의 직계 후손이기도 한 이명자씨가 추는 태평무는 우리 조상들이 나라의 태평성대를 빌면서 궁중에서 추었던 춤이다.
이명자씨는 박해 이후 자손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원래 평창 이씨 성을 가진 후손들이 성씨도 경주·창평 이씨로 바꾸고 살다가 최근에 족보(평창 이씨)를 다시 찾고 보니 이승훈의 후손임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이명자씨 역시 어려서부터 불교 신자로 신앙생활을 시작, 성인이 다 된 이후에 가톨릭교회에 입교하게 됐다. 그녀가 84년 세례를 받고, 천주교로 개종(?)하는 데에는 엄청난 시련이 뒤따랐다고 한다. “당시 춤꾼으로서 불교 도교 또는 무속에 정서적으로 훨씬 더 가까웠다”고 회상하는 이명자씨는 “조상을 생각해서 세례를 받기 위해 교리반에 나갔으나 왠지 거부감이 일고, 자비하신 신의 사랑보다는 나의 능력과 존재가 전부인 줄 알았었다”고 밝힌다.
본당 수녀와 봉사자의 헌신적인 노력과 당시 서울 성산동 본당 박성구 신부에게 감명을 받아, 그로부터 세례를 받은 이영자씨가 신앙 체험을 하게 된 것은 최근 몇 년 사이.
“춤을 추다보면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느낄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이명자씨는 “내가 추구하는 직업의 특성상 주위에서 다시 개종하라는 권유를 받기도 한다”며 “그러나 이젠 내가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주님의 성령에 의해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주님의 음성」 「빛의 부름」 등 그녀가 만든 춤극들 속에는 무당이 등장, 방울과 칼을 흔들며 신명을 내기도 해 처음 이 공연을 시작할 때는 당장 그만두라는 개신교 사목자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한국 무용의 총체적이며 복합적인 예술이 바로 태평무·학춤은 물론 살풀이 진쇠장단, 더불림, 승무가락, 궁중 무용이 혼합된 춤이 바로 태평무다. 무형문화제 강선영(현 국회의원)씨의 제자이자, 태평무 이수자 이명자씨가 추는 춤은 10박에서 36박 가지의 장단을 갖고 있는 우리 춤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한국 방문의 해를 기념키 위해 독일에서 개최되는 베를린 세계관광박람회와 동남아 공연을 위해 3월과 4월 외국 순회공연을 계획하는 이영자씨는 바쁜 중에서도 그리스도를 찾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미사 중 성가를 부를 때면 ‘성가에 맞춰 춤을 추고 싶다’는 강한 느낌을 받곤 한다”고 말하는 이명자씨. 30여년을 춤만 추며 살아왔기에 춤꾼으로서 이영자씨는 나름대로의 경지에 올라 있지만 신앙인으로서 자신의 춤을 통해 신앙을 표현하고 싶은 열정은 불 같으나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겸손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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