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과 수도회 입회 동기
1946년에 공부를 계속하기 위하여 교회 쇄신을 촉구하며 ‘새로운 신심’(Devo-tio moderna)이라는 신앙 부흥운동을 일으킨 ‘공동생활의 형제회’(Fratres Com-munis Vitae)가 운영하던 막데부르그(Magdeburg) 대성당 부속학교로 옮겨 계속 공부하였다. 이곳에서의 교육 기간은 1년밖에 되지 않은 기간으로 루터에게 특별한 영향을 준 것은 아니라고 본다.
교회 쇄신을 외치며 경건하게 생활하며 헌신하는 그들로부터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받으며 좋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본다. 특히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겸손하고 청빈한 루이스(Louis) 신부로부터 많은 감화를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루터는 겸손을 배우기 위하여 노래를 하며 문전걸식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1년 만에 그는 외가가 있는 아이제나흐(Eise-nach)로 옮겨 성 게오르그 (St·Georg) 성당 부속 라틴어 학교에서 초등교육의 마지막 3년을 공부하였는데 이곳에서의 생활이 루터에게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는 듯하다. 이 지방의 종교적인 환경은 전통적인 가톨릭 신심이 충만하였는데 이러한 분위기에서 그의 열심한 생활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모범 소년으로 인정받은 듯하다. 그는 요한네스 브라운(Johannes Braun)이라는 보좌신부로부터 성가를 배우면서 그의 음악적인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의 열심한 기도생활과 노래 솜씨를 보고 샬베(Hein-rich schalbe)와 꼬따(Co-tta) 가정은 루터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다고 한다.
신앙생활에 철저한 좋은 종교적인 이 지방의 분위기에서 모범적인 프란치스꼬회 수도자들과의 접촉을 통하여 그는 좋은 영향을 받은 듯하다. 그러나 이 투철한 신앙생활의 분위기에 걸맞은 학교에서의 엄격한 지도와 가정교육은 후일 그가 자비의 하느님보다는 가혹한 분노의 하느님에 두려움을 가지도록 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그의 일생을 통하여 신학사상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때가 바로 에르푸르트(Erfurt) 대학 시절이 아닌가 생각한다. 1501년 여름에 독일에서 유명한 대학 중의 하나인 에르푸르트 대학의 문학과에 등록하였다. 이 대학생활에서 실질적인 문화적 체험을 하였다.
본격적인 철학 공부에 들어가기 전에 관습대로 몇 달 동안 문법, 시학, 수사학을 공부하였으며 이때 그는 고전을 더욱 깊게 알게 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새로운 학문적 체험과 신앙 체험을 하게 되었다.
이미 지적인 배경에서 소개된 대로 이곳에서 루터는 학문의 새로운 방법(Viamoderna)으로 등장한 일명 옥캄주의라고도 하는 유명론(Nominalismus)을 배우면서 반가톨릭적인 학문 세계의 분위기에서 교육을 받았다. 교수들은 신앙에 저촉되는 위험을 피하면서 유명론적인 방법론에 따라 여러 학문들을 가르쳤다.
이 과정에서 루터는 향후 자신의 학문 세계의 방향을 정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곳에서 인문주의자들과의 접촉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502년 가을 학기 초에 학사 학위를 받은 후 교수가 되기 위하여 논리학, 정치학, 형이상학 등을 더 깊게 공부하였다. 1505년 2월에 석사 학위를 받은 뒤 부친의 강력한 권고에 따라 법학과에 도 등록하였다. 당시 법학과를 졸업하고 법률가가 된다는 것은 소위 출세하는 것과 같았다.
이곳에서의 신앙 체험도 향후 그의 신학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본다. 성 지오르지오(St. Giorgio) 기숙사 생활은 수도원과 같이 엄격한 규율을 적용하였으며 여러 가지 신심을 익히게 하는 등 아주 엄격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내적으로 깊은 체험을 하였는데,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감각적인 문제 때문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하느님과 심판자 그리스도에 대한 비참한 두려움을 가지면서 자주 슬픈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더구나 분트 (Bunt)라는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루터에게는 하느님의 벌로 생각되어 갈등하였다. 보다 확실한 구원을 얻기 위하여 이때부터 이미 수도자가 되고자 하는 뜻을 가졌으리라고도 하지만 확실치 않다.
1505년 7월 초순경에 당시 22세의 법학도인 루터가 만스폘트의 집에서 에르푸르트로 가던 중에 스토테름하임(Stottermheim)이라는 시골길에서 갑자기 벼락을 만나게 되었다. 이 순간, 공포에 질린 그는 ‘안나 성녀여, 저를 구해주시면 일생을 수도자로 지내겠습니다’라는 약속을 해버렸다. 당시 안나 성녀는 예기치 못한 위기 상황에서 꽤나 열렬한 성녀로 알려졌었는데, 이는 그 시대의 신앙생활의 일면을 보여준다 하겠다. 또 안나 성녀는 루터의 부친과 같은 광부의 주보성인이기도 하였다.
안나 성녀와 약속한 지 2주일 만에 그의 세속적인 출세를 기대하였던 부친의 뜻을 거스르고 에르푸르트의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후에 그는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공포와 근심으로, 부모님과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강압적으로 수도회에 입회했다고 술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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