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의정부2동본당 사무장인 정경구씨(48ㆍ필립보)는 결코「베푼다」는 말을 입에 올리는 적이 없다. 갈곳없어 방황하는 천애의 고아들, 쓰레기를 뒤지며 거친 인생의 밑바닥을 섭렵하는 넝마주이들, 피붙이 하나없이 힘들고 외로운 노년을 보내야 하는 노인들, 그들 모두가 자신의 아들이며 부모이기 때문에 그들을 도우는 일이 결코「베푸는」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의정부시를 조금 벗어난 주내면 주내역 부근에 있는 정씨의 집은 만약 서울시내에 위치해 있다면 당장 철거대상에 오를 정도로 허술하지만 늘 고아들과 넝마주이들이 끊이지 않는, 그야말로「거리의 천사」들이 편안히 쉴 수 있고 가정의 따스함을 맛 볼 수 있는 천국.
부인과 두 아들(고1ㆍ중1)그리고「거리의 천사」들이 한데 어울려 식사하고 잠을 자는 어쩌면 고아원같은 기묘한 가정을 20년넘게 꾸려나가고 있는 정씨는 도시의 화려한 빌딩 속이 아닌 쓰레기더미 속에서 이세상의 조그만 빛을 밝히고 있다.
5살 때 모친을 여의고 부친마저도 6ㆍ25때 사별, 어렸을때부터 고아의 설움과 배고픔을 맛보았던 정씨는 어렵게 입학한 의정부농고를 학비부족으로 중도에 자퇴해야 할 위기를 겪으면서 모질게 살아왔던 자신의 삶이 한순간에 꺽이는 심한 좌절감도 맛보아야 했다.
그러나 당시 의정부농고 불어교사였던 이계광 신부(현 서울 대림동본당 주임)가 자신의 교사 월급을 털어 학비를 보조해줌으로써 간신히 졸업하게된 정씨는 이때부터『받은 것을 돌려주기 위해 다같이 어렵게 살고 있는 고아들을 위해 무엇인가 보람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철부지 시절 어머니 장례식때 손님들이 많이 찾아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는 정도로 사람을 그리워했다. 정씨는 자신이 고아로 커오면서 고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풍족한 음식과 멋진 옷이 아니라「같이 살아나간다」는 가족애라는 것을 피부로 감지, 20여년전부터 거리를 방황하는 고아들을 집으로 하나ㆍ둘씩 데려오기 시작했다.
결혼하여 부인까지있는 정씨가 생명부지의 고아들을 집에 데려오는 일은 결코 쉽지않았지만『아내의 이해와 적극적인 협조가 큰힘이 될수있었다』면서『대부분의 고아들이 가정생활에 익숙치않아 부담을 느끼는것 같아 구태여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제약하지않고 단지 그들이 피곤 하고 쉬고싶을때 언제든지 내 집처럼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배려한것이 내가 할 수 있었던 모든것』이라고 겸손해했다.
불우한 이들을 가족같이 생각하는 정씨는 늙은 고아(?)들에게도 관심을 소홀히 하지않았다. 배론성지순례중 우연히 한 할머니를 알게 된 정씨는 그 할머니가 홀로 힘든 밭일을 해서 근근히 산다는 것을 확인하고 자식도 없이 고독한 노년을 보내는 노인들을 봉양키 위해 아무도 모르게 양로원 건립을 추진해왔다.
사무장 월급으로는 꿈도 꾸지못할 사업이지만 상여금을 한푼도 쓰지않고 저축한 끝에 배론에 3천평의 부지를 확보한 정씨는 가족들(고아들)의 도움으로 서서히 꿈을 현실화 시켜가고 있다. 현재 맞벌이 하는 부인과 자신의 월급을 몽땅털어도 한푼도 저축할 수 없었다고 너털웃음 짓는 정씨는『내가 잘먹는 남을 도우는 것은 한 술 덜먹고 도우는 것보다 더 힘들다』며 자신의 일이 애써 아무것도 아닌것으로 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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