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다 순교 성인 탄생지
『정한 날짜가 되면 가운데에 보통 사람 키보다 더 큰 십자가를 세운 우차를 옥문 앞에 끌어다 놓는다. 준비가 되자 회자수는 옥 안에 들어가 선고받은 자를 업고 나와 팔과 머리털을 십자가에 잡아매고 발 밑에는 발판을 놓아 쉬게 한 후 떠나라는 신호를 한다. 가파른 언덕 위에 솟아있는 서소문에 이르면 회자수는 갑자기 발판을 빼버리고 우차꾼은 소를 몰아 언덕을 곤두박질 해서 내려가게 한다. 길은 울퉁불퉁하고 돌이 많으므로 우차는 마구 뛰어올라 양 팔과 머리털로밖에 매달려 있지 않은 피고의 몸은 격심한 반동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한다. 언덕 아래에는 형장이 있다. 군사들이 사형수를 십자가에게 끌어내려 옷을 벗긴 다음 회자수가 머리를 붙잡아 나무 토막 위에 대놓고 그 목을 베는 것이다』
성 조신철은 당시 서소문 밖 순교자들의 처형 광경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한국 천추교 최대의 순교 성지인 서소문 밖 네거리는 조선 후기 천주교에 가해졌던 4번의 대박해 동안 계속해서 신도들이 순교한 곳으로, 이곳에서 목숨을 바친 순교자는 1백여 명을 헤아린다. 그 가운데 정하상 등 44명이 성인으로 선포돼 국내 순교자 가운데 성인을 가장 많이 탄생시킨 장소로도 유명하다.
「소의문」혹은「죽음의 문」으도 불렸던 서소문은 서울 내 4개의 작은 문 가운데 하나로 광희문과 함께 시체를 성 밖으로 나르던 출구였다.
◆정확한 위치 확인 불가
제1 사형장인 새남터와 제2 사형장인 당고개에서는 다른 형태, 또는 보다 장엄한 형률을 갖추어 죽일 죄수만을 취급했고, 그 밖의 일반 죄인은 모두 이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참수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서소문 밖 네거리 형장의 위치는 기록이나 문헌이 남아있지 않은데다 서소문 공원, 호암아트홀 등 고층 빌딩들이 들어서면서 정확한 현장은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몇 가지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볼 때 현재 시청에서 신촌 쪽으로 이어지는 아현 고가도로와 서울역에서 서대문 방면으로 이어지는 도로와의 교차점에서 서울역 방면으로 가까운 곳으로 추정된다.
「새남터」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비롯하여 한국 교회의 대표적인 사제 순교지라고 한다면 서소문 밖에 네거리는 자발적인 노력으로 교회를 이루고 신앙을 실천했던 평신도들의 순교지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 사형이 집행된 이로는 우선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을 들 수 있다.
그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참수 치명했다. 당시 교회의 대표적인 평신도 지도자들인 정약종 최장현 김완숙 등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순교했다.
◆1801년 이승훈 순교
순교의 행렬이 절정을 이루었던 기해박해(1839년) 때는 조선교구 설정의 주역 정하상을 비롯, 유진길 김채준 정정현 등 무수한 평신도들이 이곳에서 참수 순교하였고, 이 가운데 41위가 시성의 영광을 안았다. 1866년 병인박해 때는 승지를 지내고 신앙 자유 방책을 모색하던 남종삼 등 여러 명이 이곳에서 피를 흘렀고 이들 무명 순교자 가운데 3위가 성인 반열에 올라 이곳은 103위 성인 가운데 44위의 성인이 탄생한 한국 천주교 최대의 순교 성지가 된 것이다.
1892년 교회는 서소문 밖 네거리가 내려다 보이는 약현에 성당을 세웠다. 지금의 중림동성당이다. 교회는 또 1894년 서소문공원 안에 기념비를 세워 이곳에서 참수 순교한 성인들을 기리고 있다.
◆도심의 소음 속에 방치
그러나 정작 우여곡절 끝에 건립한 순교 기념비는 현재 지하 주차장 공사장 한 켠에서 방치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서울교구에서는 서소문 순교 성지의 훼손 원인을 면밀히 검토, 이전 계획까지 거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비단 이곳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순교자 현양탑의 비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새로 태어난 순교 성인들을 받들어 기리고 한국 천주교회 창설 2백주년을 기념하면서 순교 선열들의 뜨거운 믿음과 얼을 본받아 길이 이어나가기를 다짐하는 마음으로 여기 이 돌을 세운다』.지금 우리의 삶은 어떠한지 반성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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