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유년 시절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1483년 11월 10일 아이슬레벤(Eisleben)에 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한스(Hans)는 원래 가난한 농부였으나 루터가 태어난 그 이듬해에 만스펠트(Mans-feld)시의 광산지역으로 이사하였다. 이곳에서 광부로 성실히 일한 끝에 몇 개의 채굴광을 가진 경영주가 되면서 노동자의 신분에서 벗어나 성공한 사업가로 부각되었다. 1491년에는 만스펠트시에서 시민의 권익을 대표하는 4명의 대표자 중의 한 사람으로 선출되었고 1507년에는 지방의 유지로 존경 받으며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하였다.
아이제나흐(Eisenach)도 시민 가정인 지글러(Zieg-ler) 집안 출신의 마르가리테 린데만(Marigarithe Lin-demann)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사료가 남아있지 않아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루터의 전기와 그 집안의 내력을 잘 아는 스팔라틴(Spalatin)과 멜라틴(Melanton)의 언급에 의하면 루터의 모친은 특별히 정결하고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열심히 기도하는 훌륭한 덕행을 지녔다고 한다.
루터는 유년시절에 아주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자녀들을 출세시키려는 부모들의 교육 방법의 하나였다고는 하지만, 루터는 자기에게 과도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나의 양친은 내가 기가 질릴 만큼 엄한 가도 안에 나를 두었고…이러한 엄한 가도를 통해 나를 수도원에까지 나를 이끌었다.” 또 그는 단 한 알의 호두 때문에 어머니가 피가 나도록 자기를 채찍질했다고 말했다. 종교적으로도 부모들의 이러한 엄한 교육이 그에게 부정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리스도란 이름만 들어도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지곤 하였다. 왜냐하면 나는 그를 오직 엄격한 분노의 심판자로서 생각하도록 교육 받았기 때문이다”라고 술회하였다. 이러한 그의 심리 상태는 하느님에 대한 그의 신학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
1489년 6세 때 만스펠트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7년간 라틴어 문법과 작문을 배우면서 고전적인 저자들의 작품과 접촉하였다. 이곳에서의 교육방법은 학교에서나 성당에서 늘 외우고 노래하던 시편이나 후렴이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에 대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엄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지만, 하루에 15번이나 벌을 받은 적이 있다는 그의 회상에 따르면 엄격한 교육 방법이 적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여간 루터는 유년·소년 시절을 가혹하리 만큼 엄하고 경건한 가도 안에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그의 회고록에서 그는 그의 부모의 교육방법에 대하여 일종의 원망감을 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내지만, 그는 당시의 가치관에서 볼 때, 모범적인 소년으로 자라났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자녀들에 대한 종교 교육에도 혹시 위와 같은 부정적인 면이 있지 않나 생각해 보아야겠다. 아이들이 부모의 가르침을 잘 따르지 않거나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하느님의 징벌만을 내세우며 겁을 준다거나, 또 어떤 손해를 보거나 실패하며 화를 당했을 때 하느님의 벌을 당연히 받은 것으로만 가르친다면 자녀들에게 하느님은 늘 무서운 심판자로만 생각될 것이다.
길을 걸어가다가 넘어져 상처를 입거나 시험에 낙방할 때에도 하느님의 벌로써만 내세우며 꾸짖는다면, 하느님의 편에서 보면 얼마나 억울하고 기가 막히실까! 자신의 한 눈 팔며 부주의하다가 넘어졌고, 평소에 게으름 피우며 성실하게 공부하지 않다가 시험에 낙방한 탓까지 하느님의 벌로 가르치는 것은, 분명히 하느님을 너무 속 좁고 쩨쩨한 분으로 몰아붙이는 처사가 되고 말 것이다. 올바른 길로 가지 않는 자녀들에게는 하느님께서 그동안 부모와 친지들을 통하여 베풀어주신 갖가지 사랑과 은혜를 상기시켜야 할 것이다. 자신을 배반한 친구에 대한 원망과 슬픔이 크듯이 하느님은 얼마나 슬퍼하시며 올바른 길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지 하느님의 사랑을 일깨워 주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잘못하더라도 우리가 잘못을 인정을 하며 뉘우치고 하느님께 용서를 청할 때 빗방울 하나가 넓은 바다에 떨어져도 흔적이 없어지듯이 하느님은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신다는 하느님의 자비를 더 강조해야 할 것이다.
하느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어느 어머니보다 상상을 초월하여 훨씬 더 자비롭고 포근하신 분으로 가르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우리의 티끌만 한 정성에도 태산 같이 큰 은혜를 베푸시며 사랑과 자비가 충만하신 하느님이 우리를 늘 포근하게 감싸주고 계심을 느끼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하느님에 대한 포근한 마음을 지닌 사람은 언젠가 그 자신도 용납할 수 없는 무거운 죄에 짓눌릴 때에도 자비의 하느님께 다시 돌아가는 힘과 용기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탈리오의 법칙에 따르면 엄격한 정의의 하느님으로서가 아니라 잘못을 뉘우치는 자에게 한없이 포근하신 하느님임을 우리 자신이 보여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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