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성우회를 시작할 때는 원로신부님들이 세 분 계셨다. 그런데 지금은 40여 분의 원로 신부님을 모시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원로신부님들을 모시게 될까. 그러고 보니 성우회가 참 좋은 몫을 활동으로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원로신부님들과의 추억이 생겼지만, 처음 모신 원로신부님이자 내 혼배 주례신부님인 고 장금구(크리소스토모) 신부님이 기억난다.
1997년 미국 유학 중인 아들 안드레아를 보러 가기로 했다. 두 달 동안 한국을 떠나 있어야 하기에 그 전에 장금구 신부님을 뵈러갔다. 신부님께서는 오랜만에 왔다고 하시며 역정 비슷한 말씀으로 책망하셨다. “신부님을 뵙고 간 날이 얼마 안 됐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두 달이나 됐다”고 하시며 “그동안 많이 기다렸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자주 방문한다고 생각했는데, 신부님은 더 많이 기다리고 계셨다. 이 말씀을 듣고 얼마나 죄송한지…. 오랫동안 누워계신 신부님께서는 방문자가 그리우셨나보다.
그 당시 나는 매일 시간에 쫓겨 살았다. 신부님을 뵈러 간 날도 시간에 쫓겨 허덕였지만, 그래도 신부님을 뵈러 가려고 간식 보따리를 들고 택시를 타고 갔다. 미국에 다녀온다고 인사드리니 누워계시면서도 머리에 손을 얹고 강복해 주시고 건강하게 다녀오라고 하시며 눈물을 흘리시는 것이었다. 나 역시 눈물이 나와 같이 울었다.
신부님께서는 바나나를 사주고 가라하셨다. 버스를 타고 방문할 시간이 없어 택시를 타야 할 정도였지만, 즉시 시장에 가서 제일 탐스런 바나나를 사다 드리고 다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신부님께 방문할 때 이것저것 신경 써서 사 드리는데, 그런데도 바나나를 사달라고 말씀하시는 신부님의 마음을 생각하니 내 마음도 찡했다. 다음 일정이 늦을까 내 마음이 바쁘긴 했지만 드리고 오니 잘했다 싶었다.
미국 방문을 마치고 한국에 도착해 신부님 안부를 물으니 귀국 하루 전날 선종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행히 장례미사에 참례해 신부님의 영정 앞에서 연도를 바치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신부님께 마지막 선물로 탐스런 바나나 한 다발을 드려 마음을 기쁘게 해드린 것이 한가지 위안이었다.
장금구 신부님은 호랑이 신부님이라고 소문이 난 분이었다. 혼례 때 복잡해 신부님을 빨리 모시지 못해 화가 난 신부님이 나오지 않아 혼배사진에 주례 신부님과 같이 찍은 사진이 없었다. 원로신부님으로 계실 때 방문해 이 말씀을 드렸더니 누운 채 웃으시며 지금이라도 같이 찍자고 하시던 신부님 생각이 지금도 난다.
“하느님! 주례 신부님의 장례미사에 참석하게 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주례 신부님께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이순자
(막달레나·77·수원대리구 율전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