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국가인 아일랜드가 5월 25일 실시한 ‘낙태 허용을 위한 헌법개정 여부’ 국민투표에서 한 수녀가 투표하고 있다. CNS
【더블린 CNS】 유럽의 대표적인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가 국민투표를 통해 헌법에 규정된 태아의 생명권 조항을 삭제함으로써, 임신 12주 이내 태아를 임의로 낙태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아일랜드는 5월 25일(현지시간) 낙태 허용을 위한 헌법 개정 여부를 두고 실시한 국민투표에서 찬성 66.4%, 반대 33.6%의 압도적인 표차로 헌법의 태아 생명권 조항을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국민 대부분이 가톨릭신자인 아일랜드에서는 1861년 낙태 금지법이 처음 제정됐다. 1983년 국민투표에서는 태아와 임산부에 동등한 권리를 부여한 수정헌법 제8조가 통과됐다. 이 조항은 성폭행이나 근친상간 등의 경우에도 낙태를 엄격하게 금지한다.
하지만 이번에 실시된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수정헌법 제8조는 삭제되고 낙태 허용 규정이 삽입될 예정이다.
리머릭교구장 브렌던 리하이 주교는 국민투표 하루 뒤인 5월 26일 “이번 투표 결과는 많은 국민들의 뜻이 나타난 것이지만 우리의 입장이 투표 결과로 변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모든 이들의 생명, 특히 어머니의 자궁 안에 머무는 생명에 대한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투표 후 즉각 실시된 한 출구조사에 따르면, 낙태 허용 지지자들은 임신과 출산에 대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 여성의 건강과 생명권, 강간에 의한 임신 등을 낙태 허용 지지 이유로 꼽았다. 낙태 반대자들은 태아의 생명권, 다운증후군 환자 등 장애인의 생명권, 종교적 신념을 낙태 허용 반대의 이유로 제시했다.
아일랜드 정부는 이번 투표 결과를 바탕으로 조만간 하원에 입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입법안 내용은 임신 12주 이내 낙태는 제한 규정을 두지 않고, 12~24주 기간에는 태아의 기형이나 임산부의 건강상 위험이 있을 때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유엔 주재 교황청 옵서버인 이반 주르코빅 대주교는 아일랜드 국민투표가 실시된 5월 25일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서 “‘안전한 낙태’ 보장이 여성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다는 주장은 모순”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반 대주교는 “사실상 낙태는 태아의 기본권인 생명권 그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라면서 “유엔 및 산하 기구는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입법을 지지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