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사람의 당당함과 남은 사람들의 고민(?)이 담긴 이 풍경은 서울 중심가의 한 네거리에서 항상 일어나는 일이다.
멀쩡하게 켜진 빨간 불과 건너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쳐다보며 신호를 지키다가는 오히려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야만 한다.
파란 불이 켜져 있는 동안 건너가기 힘들 만큼 건널목 거리가 길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네거리 신호 체계의 허점을 알아차린 마음 급한 사람들의 발 빠른 동작은 ‘빨간 불은 정지, 파란 불은 통행’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상식조차도 무시해버리는 관례(?)를 만들었다.
신호등이 짧은 대신 고가다리 밑에서 쉬어갈 수 있는 여유자리도 마련돼 있고 또 건너가지 말라는 무언의 표지로 2개의 신호등이 번듯하게 켜져 있는데도 아랑곳없다.
빨간 불에 건너가도 파란 불에 건너기 시작한 이와의 차이는 분명 오십보백보이거늘 성급한 마음에 1분, 아니 1초도 참지 못한다.
차도에 내려서서 신호를 기다리는가 하면 빨간 불에서 노란 불로 바뀌기 무섭게 뛴다. 아예 빨간 불이 켜져 있는데도 틈만 보이면 건너가기 일쑤다.
조급한 우리의 생활 습관은 비단 길거리에서 뿐만 아니라 성당에서, 전철에서, 직장에서, 줄을 설 때, 문을 나설 때, 걸어 다닐 때조차도 몸 깊숙이 뿌리내려져 있다.
『왜 안 됩니까』의 해답이 바로 여기에 있다. 상징적인 시간 30초, 이 촌음을 참고 기다리는 여유로운 마음이야말로 우리를 달라지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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