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장애인들은 비장애인이 갖고 있는 그릇된 상식으로 인한 편견 때문에 자신의 장애 자체보다 더 가혹한 아픔을 견디며 살아가야 한다.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인 장애를 막론하고 장애인들은 이러한 편견으로 결국 집안에 갇혀 지내거나 복지시설에 수용돼 재활이나 자활의 기회를 박탈당한 채 같은 인간으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구호나 자선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은 장애인을 정상인과 똑같은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이 빚어낸 비극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장애인이 신체의 일부가 불편한 장애인에게 행하는 폭력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심지어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다는 사실이 집주인에게 발각되면 전셋집에서 쫓겨나야 하기 때문에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숨겨야 할 경우도 많다.
◆장애보다 더한 편견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 사는 오치영(43·예비자)씨는 지난해 9월 뇌성마비 장애인인 정수(10세)군을 데리고 이사를 갔다가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이사를 왔다는 주인집의 구박이 워낙 심해 이사간 지 한 달 만에 쫓겨나기도 했다.
또한 이수환(16·베드로)군의 경우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근육수축증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되자 학교도 그만 두게 됐고 현재는 집안에만 늘 혼자 남아 있다.
이수환군의 가족들은 요즘 수환군 때문에 수환군의 두 누나가 시집을 가지 못할까 고민하고 있다고 스스럼없이 말하고 있다. 이미 몇 년째 누워있는 수환이로서는 가족들로부터 자신이 짐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더없이 괴로운 심정이다.
"집안에서 짐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복지시설에 가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아요.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소원이지만 자신이 집을 나감으로써 화목이 온다면 차라리 그것을 택하고 싶다"는 수환군.
이처럼 장애인은 자신의 자활이나 재활에 관심을 두기보다 주위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야 하는 처지이다. 아예 출생 신고도 하지 않은 채 죽기만을 기다리는 매정한 가족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러한 현실에서 대부분의 장애아와 그 가족들은 이중 삼중의 고통 속에 지내야만 한다.
◆출생 신고 않는 예도
물론 장애인 가정 중에는 가족 구성원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 속에 어린 나이를 보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장애인에게는 한 순간일 뿐 부모들이 사망하고 언젠가는 홀로 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장애인 부모나 자신에게는 더없이 불안한 나날일 수밖에 없다.
결국 장애인 가정은 사회와 이웃으로부터 단절되고 장애인은 가족으로부터 끈 떨어진 연처럼 남는 것이 장애인의 일반적인 삶의 현상이다.
장애인의 발생 빈도를 볼 때 고학력 고소득의 가정보다는 저학력을 가진 저소득 가정에서 장애인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장애인 가정의 대부분이 월세나 전세 정도의 집에서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끈 떨어진 연 같은 삶
가정 형편상 부모 중 한 사람이 장애인 자녀를 전적으로 돌보거나 자활교육을 위해 헌신할 여력이 없는 경우의 장애 아동들은 상대적으로 더 소외당하고 교육의 혜택을 받을 기회를 놓치게 마련이다.
다만 몇몇 장애인 부모들은 장애인 자녀들의 장래를 위해 자활 작업장을 마련하고 있기는 하지만 극소수에 불과할 뿐이다.
현재 우리나라 장애인 수를 1백만 명이라고 추정할 때 90만 명 이상이 교육 혜택이나 자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재가 장애인으로 분류되고 외출조차 허용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재가 장애인 90만 명
혼자서 길을 나설 수 없는 신체적 장애도 있겠지만 자신들을 바라보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버스나 택시, 전철 등 어느 것 하나 장애인들의 외출을 막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성당에 가고 싶어도 성당조차 휠체어 통로나 점자 주보, 수화미사 등 제대로 갖춰진 것이 없다. 장애인에 대한 교회의 관심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강서구 화곡동의 조정민(31·안젤로)씨는 "오늘 우리 가운데 구세주께서 다시 와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하신다면 장애인들을 오늘 같은 모습으로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반문하고 "교회 내 복지시설을 몇 개 더 마련하는 것보다 장애인에 대한 근본적인 관심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회도 장애인에게 구원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과 함께 장애인의 발을 꽁꽁 붙들어 매는 데 한 몫을 했다는 지적으로도 들린다.
물론 서울 가톨릭 사회복지회 재활사업부나 장애인 종합복지관 등을 중심으로 장애인도 인간적인 대접을 받고 살아갈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재가 장애인 교육, 조기 교육원 개설, 장애인 탁아소 개원으로 그들의 요구에 부응하려는 노력이 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재활사업부는 최근 초기에 장애를 발견해서 재활 치료의 가능성을 높여 주기 위해 장애인 조기 교육원을 서울 금호동본당과 시흥동본당에 설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장애인을 위한 다각적인 관심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로 장애아 대리 보호의 집인 ‘햇빛자리’를 개원, 장애인 부모들이 장애 자녀를 말기고 편안하게 일터를 찾을 수 있도록 배려, 장애인 사목의 획기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교회마저도 외면
그러나 교회 관계자들은 장애인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교회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한결같이 지적하고 있다.
장애인을 위한 장단기 사목 계획 수립과 장애인 사목에 대한 적극적인 후원, 전담사제 임명, 각종 전례 및 신심 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편의시설 마련, 신학교에서의 장애인에 대한 예비지식 습득, 교회에서 발행하는 주요 책자의 점역 등을 통해 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사목 방향 설정을 촉구하고 있다.
장애인 복지 관련 관계자들은 교회의 이러한 근본적인 노력과 함께 각 본당을 중심으로 지역사회 내 장애인을 위한 적절한 사목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본당 중심 사목 필요
주위의 따가운 시선으로 찢겨진 장애인 가정의 상처를 감싸 안기 위해서는 본당이 나서서 지역 내 장애인 가정과 장애인들의 실태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본당 조직의 근간이 되는 반모임과 레지오 마리애 등을 활용해서 장애인들을 위한 방문 봉사단을 조직하고 본당마다 장애인 조직 교육원이나 탁아시설을 마련, 교회 스스로 그들을 위해 다가가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가장 소외 받고 있는 그들이 동참하지 않는 복음화 사업은 진정한 믿음이 없는 헛된 구호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계 가정의 해를 맞은 한국 교회는 가정의 기능을 회복하고 기초 단위인 건강한 가정을 육성하는 데 많은 관심과 힘을 쏟고 있다. 절망과 소외감으로 교회 공동체에 편입되지 못하고 있는 장애인 가정을 찾아가 찢긴 마음을 감싸주는 사랑을 실천해야 할 때가 바로 오늘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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