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장례 때마다 망자를 떠나보내며 명복을 빈다는 표현을 합니다. 죽음으로 우리를 떠나 하늘나라에 가신 분이 하느님 품 안에서 영복을 누리기를 비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이 자리는 좀 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윤임규 신부님은 지난 13일 밤 1시 중국 감숙성 무위시 132호 국도상에서 교통사고로 중국인 신부 1명과 수녀 등 5명이 참변을 당하는 가운데 함께 계셨습니다. 북경에서 기차로 30시간을 가는 서역 땅에서 완전한 종교 자유를 누리지도 못하는 성신회 수녀들에게 피정 지도를 하기 위하여 찾아가시던 길이었습니다. 하느님과 일치하여 사는 길을 가르치시기 위하여 오직 그 목적만으로 그 길을 가셨던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곳에 하느님의 힘이 닿지 않는 데가 어디 있으며 온 세상이 하느님의 영역이라, 누가 감히 하느님의 손길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까마는, 사람은 그러나 작은 머리로 생각을 하고 판단을 하며 스스로 사는 능력을 부여 받았기에, 계획도 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신통한 정신활동을 하고, 독자적으로 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은 큰 병 없이 죽지 않을 것이며, 또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그 학식을 남에게 의당히 전해주어야 하는 것으로 예상하고, 우리들은 내년이면 윤 신부님이 우리 신학생들을 지도할 것이라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의 생각이 전연 어긋나도록 하시고,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사람들이 예측할 수 없음을 다시 깨우치게 하셨습니다.
윤 신부님은 중국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방학 때 대중교구의 고산족 본당에서 지내면서 참으로 가난하고 순박한 본당 신부의 삶에 감동되어 자신도 그렇게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려고 하였습니다. 지극히 가난한 사제의 생활을 보며 그것을 배우고자 그곳에서 머물기를 좋아했고 뱀이 나오는 침실에서 만두 하나를 먹고 안빈낙도 하는 삶을 진복으로 삼고자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초로 인생의 도를 한데 엮는 기쁨으로 즐거워하였던 것입니다.
말 한마디 모르는 중국말을 배워서 7년 반 만에 주역에서의 생을 설파하여 철학 박사 학위를 받고, 볼에 살이 찌고 피인 얼굴로 귀국하자마자 그동안 대만에서 잘 지낸 은혜를 갚음이 좋겠다고 다시 대중교구에서 봉사하기를 청하셨습니다.
우리 신학교에서 동양철학을 한두 시간 수업하는 것보다 은혜를 갚고, 남을 사랑하고 봉사하는 것이 후배 신학생들에게 더 큰 가르침이 될 것이라며 1년을 허락하였던 것이 영원한 봉사로 끝마쳤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을 강론하는 피정 지도신부는 종신서원을 준비하는 수녀 앞에서 끝까지 하느님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의 모습을 보였고, 버림받은 것 같은 중국인 신자들의 가난한 마음을 신부님은 그 모습으로 채워주신 것입니다. 신부님은 사람들을 사랑하는 삶으로 끝마치셨기에 사랑에 찬 그 영혼은 영원한 사랑 가운데 사실 것입니다.
천당에 가신 신부님의 시신을 거두어 오면서 우리는 불멸하는 영혼의 삶과 육신의 허약함을 다시 깊이 인식하며 육신에 매여 사는 우리들의 아둔함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이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오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이 지상에서 깃들이던 집이 무너진 다음에는 영원한 거처가 천국에 마련된다는 것을 오늘 우리는 우리의 말로 확실히 말하여야 할 것입니다.
2백 년 전 한국인이 모셔온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한국에서 죽음을 당하셨듯 이번에는 중국인들이 모셔간 윤 신부님이 중국에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물론 순교의 칼이 없었으나, 그리스도의 구원을 전하려는 마음은 같았을 것입니다. 이 어찌 사제의 갈 길이 아니었습니까.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시고자 하느님은 오늘 그 어려움을 무릅쓰고 윤 신부님의 시신을 우리에게까지 운구토록 중국 당국의 허가를 내리게 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신부님의 시신을 모셔와서 우리와 함께 계시도록 우리 곁에 묻으려 합니다. 죽음으로 우리를 떠나신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우리에게 돌아오시고 우리 땅에 묻히시고 우리 마음에 남아 계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신부님을 보내기보다 신부님을 모셔야 하겠습니다. 우리 신학생을 가르치는 동양철학 교수신부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가르치는, 우리 모두에게 하느님의 진리를 일깨우는 하느님의 사자로서 우리는 그분처럼 영원히 하느님과 함께 사는 길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천주는 찬미 받으소서. 아멘.
대구대교구장 이문희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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