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뎃따는 1866년 7월 7일 수녀원에 입회했다. 「빠리」에서도 기차로 3시간정도 걸리는「느베르」에 있는 생질다르수녀원이었다. 이때 나이 22세였고 발현을 본지 8년만이었다. 베르나뎃따가 이 수녀원을 택한 동기는「성모의 원죄없는 잉태」에 봉헌된 수도원이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있다.「원죄없는 잉태」는 성모님이 베르나뎃따에게 직접밝힌 성모님의 이름이다. 7월 8일에는 이「성모님을 본 소녀」「마리아의 특은을 입은 소녀」가 호기심많은 수녀들에게 끝없이「신기한 물고기」가 되지않을 조처가 내려졌다. 즉 생질다르 수녀들은 물론「느베르」에 있는 다른 두 수도원 수녀들까지 모아놓고 발현이야기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라는것이었다. 그날 이후에는 아무도 발현에 대해 묻지도 대답하지도 말라는 명령이 내렸다. 이것으로써 베르나뎃따의 루르드에서의 과거는 끝나고 수녀로서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다.「성모님을 본 소녀」가 혹시나 교만에 빠질까 염려한 장상들은 베르나뎃따를 지나치게 냉정하게 대했다. 자존심을 꺾기위해 고의로 무안을 주기도 하고 꾸짖기도 했다. 베르나뎃따는 가족과 떨어진 것보다 발현 동굴에 가고 싶은 것을 참기가 더 어려웠다.
수녀원은 호기심 많은 방문객들의 방패가 되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렇다고 주교님들이나 신부님들의 방문과 질문을 일일이 거절하기나 피할 수는 없었다. 9울초에 어릴 때 앓던 만성천식이 악화되어 침대에 눕게되었다. 이 천식 때문에 베르나뎃따는 제대로 발육이 안되어 키가 1m40cm밖에 안되었다. 기침과 호흡고란 때문에 고통을 받으면서도 옆에서 간호하는 사람에게 방해가 되는 것을 몹시 미안해했다. 고통을 잘 참는 베르나뎃따의 인내심에 감탄할라치면『착하신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것이니 잘 받아 들여야 하겠지요』라고 말했다.
그녀의 유일한 불만은『사람들이 나에게 너무 잘해준다』는 것이었다. 병상에 누워서도 『가난한 사람들은 이런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데…』하고 되뇌였었다.
항상 소화불량으로 고생을 했지만 대부분의 수녀들이 눈치채지 못했다. 가슴을 찢는듯한 발작적인 기침은 너무나 고통스러워 『나의 예수님!』하며 십자가를 바라보곤 했다. 10월 25일 수도원 주치의 로베르 쌩씨르 의사가 밤을 넘기지 못하리라고 선언했다. 수도원 평의회 서원을 시키기로 결정이 내렸다. 서원문을 읽을기력조차없는 베르나뎃따를 위해 주교가 서원문을 읽고 베르나뎃따는 『아멘』이라고 대답함으로써 서원식은 간단히 끝났다. 이튿날 베르나뎃따가 소생하자 총장수녀는 서원수건을 벗기고 수련자의 위치로 돌려보냈다. 서원은 철회됐다. 배르나뎃따마다 십자가를 꼭 쥐고 『나의 진정한 피난처』라고 말했다. 12월8일에는 어머니 루이즈가 41세로 사망했다. 고통중에서도 베르나뎃따는 어머니가 「원죄없는 잉태」축일에 돌아가신 것을 한가닥 위로로 삼았다.
함께 기거하여 병구완을 못이겨 발현에 대한 유도심문을 할때마다『당신은 호기심이 너무 많군요. 당신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거에요』라고 응수했다. 그녀 가까이서 그녀를 지켜본 수녀는『아무것도 유별난 것은 없었다』고 증언한다.
베르나뎃따는 스스로 수도원 『의무실의 단골손님』이라 할만큼 자주 앓아누웠다.
베르나뎃따는 기침 때문에 수련을 받다가도 교실에서 자주 쫒겨났다. 그러나 그녀는 수련장수녀를 어머니처럼 사랑하고 따랐다. 베르나뎃따에게 또 하나 어려운점은 공부였다.
국민학교조차 나오지않은 처지라 공부는 늘 꼴찌였다. 수학、문법、철자 모두가 어려운 것이었다.
1867년10월30일 포르까드 주교에게 그녀는 서원을 했다. 다른 서원동료들이 발령장을 받고 활기차게 소임지로 떠났으나 베르나뎃따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주교로부터 의무실을 돌보는 일외에 『기도의 소임』을 받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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