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일행은 길을 가고 있었다. 그 길은 예수의 일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인생길이었다. 그들은 지금 유대아인들의 성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고 있었다. 이번 예루살렘 상경길은 종전과 같이 유대아인들의 과월절 예식에 참석하려는 것이 아니고 때가 차서 예수께서 하느님이 뜻을 이루시려고 구원의 사업을 완수하시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여행길에 그동안 예수를 진심으로 따르던 무리들이 동행하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뜻대로 정해진 죽음을 받으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고 있었다. 며칠 전에는 유대아인 지도자들의 마수를 피하여 외딴 곳으로 피신하셨지만 지금은 때가 무르익었기 때문에 누구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고 비장한 각오로 자발적으로 죽음을 향하고 계신 것이다.
피신처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예리고가 있고 그 밖에 몇몇 작은 동네가 있다. 예수의 수난의 길은 결코 혼자만의 고독한 길은 아니다. 그 분은 따르는 사람들이 있고, 그 따름은 예수의 수난길과 마찬가지로 수난의 길을 뒤따라가는 것이다. 그들도 이 수난을 예감한 듯 망연자실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무서움에 휩싸여 있었다. 예수께서 앞장서 가시고 제자들은 뒤따르고 있었다. 길가는 도중 예수께서는 많은 제자들 가운데서 12제자를 따로 부르셨다. 중요한 말씀을 하시려는 것이었다. 12제자를 따로 부르셨다는 것을 예수를 따라 예수살렘 길을 가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전제한다.
12제자는 장차 예수의 구세사업의 메시지를 계승 담당해야 할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스승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운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히 계시의 말씀을 이미 두 번이나 말씀하셨지만 (대목 128과 135 참조) 너무나 엄청난 말씀이어서 그들에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세 번째 예언을 하시려는 것이다. 몇 백 년 동안 대대손손이 오로지 성서에 의거해 살아온 이 하느님의 백성은 겉핥기식 성서생활을 해 왔을 뿐 성서의 본 줄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예수께서는 그 본령을 알려주시려는 것이다.
자, 지금 우리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에 관하여 예언자들이 기록한 일들이 모두 이뤄지게 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이방인들에게 넘겨질 것이며, 희롱을 당할 것이며, 모욕을 당할 것이며, 침 뱉음을 받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채찍질한 다음 죽이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흗날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이란 호칭은 메시아 구세주의 지칭이며 이 호칭은 예수 자신을 가리킨다는 것을 12제자들은 잘 알고 있었다. 이 사람의 아들을 이방인들에게 넘겨주는 이는 오랫동안 구세주를 기다리던 유대아인의 지도자들 즉 대제관들과 율법학자들, 바로 그 사람들이다. 이 수난 예고는 예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삶의 복음이 예수의 수난을 정점으로 이루어지고 복음에 대한 사람들의 응답이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으로 보증된다는 것을 일러주는 것이다.
예수의 수난상은 이사야 예언서의 후반을 차지하는 ‘주님의 종’에 관한 예언을 반영한다(이사 40∼55장). 여기서 주님의 종은 하느님의 인류구원 계획을 실천에 옮길 사명을 띤 사자로 묘사된다. 그에 대한 신탁의 말씀은 4가지 내용으로 짜여 있다. 첫째 주 하느님은 그 종을 “이는 내가 사랑하는 자이다”(42,1∼9)라는 신탁 말씀으로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들려온 말씀이다(마르 1,9∼11; 마태 3,13∼17; 루가 3,21). 둘째 주님의 종이 모든 민족에게 하는 말씀이다(41,1∼13). 이것은 예수의 복음 전파 활동에 해당된다. 셋째 세련된 말솜씨로 원수들의 시달림에 지친 힘없는 사람들을 일으켜주는 이로 묘사된다. (50,4∼9) 그는 세상의 죄값을 대신 짊어질 하느님의 어린 양이다(이사 53,7.12; 요한 1,29.36). 넷째 주님의 좋은 ‘고통 받는 종’으로 혹독한 고통을 겪은 후 영광스럽게 드높여질 것이다. (이사 52,13∼53, 12). 이 넷째 예언이 오늘 예수께서 예고하시는 수난상에 해당한다. 눈앞에 영광만을 기대하고 있던 제자들이 이 심오한 신비를 깨달을 리가 없었다.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그들은 알아듣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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