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내부의 상황
이 시대의 교회 모습을 가장 적절하게 드러낸 표현은 ‘총체적 위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니콜라오 5세 (Nicho-las, 1447∼1455)에서 시작하여 레오 10세(Leo, 1513∼1521)에 이르는 10명의 르네상스 시대 교황들은 갈릴레아의 가난한 어부였던 베드로 사도로부터 위임된 최고의 착한 목자로서의 사명보다는 족벌주의적인 가문의 세력 확장과 자신의 업적이나 명예를 드러내는 데 더 열중하였다.
따라서 영적 지도자로서의 사명도, 교회를 쇄신하고 보호해야 하는데 최고 행정가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종교개혁의 진원지인 독일 교회는 전 영토의 1/3을 소유할 정도로 아주 부유한 세력으로 군림하였다. 또 고위 성직자들 가운데 50명의 주교들 26명의 남자 수도원장, 18명의 여자 수도원장들이 봉건 제후들이었다.
이 주교들 가운데 3명은 황제를 선출하는 선제후였고 1명은 총리였다.
즉 독일에서 교회는 부와 권력을 동시에 지닌 권좌에 있었다. 따라서 세속 제후들은 가문의 세력을 확장하고 강화하기 위하여 자기 아들들을 모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주교좌에 앉히기 위하여 투쟁도 불사하였다.
이러한 동기와 목표로 주교직에 오른 그 아들들이 사제적 성소의식을 가질 리 만무하였으며 영성생활이나 사목활동에 열성을 보이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이들은 목자로서의 주교직보다는 부와 권력을 누리는 제후의 권자가 1차적인 중심이었다.
따라서 세속 제후들과 마찬가지로 사냥 축제향연 마상시합 등으로 세월을 보내고 비윤리적인 생활을 즐기며 독신생활을 지키지 않기 일쑤였다.
대성당의 참사 회원과 막대한 성직록을 받는 중급 성직자들의 자리도 대개는 귀족 자제들의 몫이었다. 역시 이들에게도 목자로서의 신분에 어울리는 사제생활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삶의 형태가 고위 성직자들의 생활과 대동소이 했다.
소위 무산계급 성직자라고도 일컫는 하급 성직자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였다. 사제품을 받는 데 요구되었던 것은 기초적인 교리 지식과 라틴어 독서 능력이 전부였다. 그리고 이들은 미사를 봉헌하고 성무일도를 바치는 단순한 의무를 가졌지만 자기들이 읽는 라틴어 내용을 거의 이해하지 못한 자들이 많았다. 경제적으로 비참했던 이들에게 성직자로서의 모범적인 윤리생활이나 사목적 열성을 기대할 형편이 못되었다.
수도생활도 예외가 아니었다. 많은 수도원들이 지원자들에 대한 엄격한 심사도 없이 받아들였고 이들에 대한 영성 수련과 교육 등 양성에 철저하지 못했다.
규칙적인 기도생활이나 공동생활도 없었고 봉쇄구역(clausura)도 있으나마나 하여 남녀 구별 없이 자유롭게 출입하는 수도원도 있었다. 또 어떤 수도자들은 오랫동안 수도원 밖에서 생활하기도 하였다. 더구나 수도원이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고 대지주에게 의존할 경우 그 대지주가 수도원장의 임명에 월권행위를 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평신도가 수도원장직을 수행한 경우도 있었다.
위와 같은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가? 우선 교회가 그 본연의 사명과 역할의 한계를 넘어 세속 권력과 재물에 깊숙이 간여하여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 그 내적인 원인으로 지적될 수 있고, 외적인 원인으로는 내적 원인의 결과로 세속 제후와 귀족들의 교회가 지닌 권력과 재산을 탐하여 교회를 정치적으로 악용한 결과 교회의 자율권이 박탈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고위 성직자들의 비복음적이고 비윤리적인 생활이 일반 대중에게 오랫동안 묵인되었는데 이는 그들의 역할이 영신적인 지도자로서보다는 세속 군주로서의 역할이 더 중요하게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제직의 가치가 하락하고 성직자들에 대한 불신이 고조되었다.
물론 전 교회가 총체적으로 타락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교회의 쇄신을 위하여 순교적인 희생으로 살신성인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도 적지 않았다.
당시 2백30여개의 남자 수도원과 17개의 여자 수도원을 둔 카르투지오 수도회는 개혁의 필요성의 없을 정도로 수도생활의 본질적인 소명에 충실하였다.
서 말 밀가루 반죽을 부풀게 하는 누룩이나 티끌만 한 겨자씨처럼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는 소수의 남은 자들에 의하여 교회쇄신운동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