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 마지막 주일은 교회가 정한 사회복지주일이다. 한국 교회는 지난 92년 가을 주교총회에서 해외 원조사업에 나설 것을 공식 천명한 바 있다. 제4회 사회복지주일을 맞아 지난 한 해 동안 해외 원조에 심혈을 기울여온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의 활동을 중심으로 해외 원조의 필요성과 의의, 오늘날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아현상 등을 특집으로 꾸며본다.
폐허가 된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전쟁고아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어린 것에게 가죽뿐인 젖가슴을 물린 채 쓰러져 있는 여인, 숨조차 쉬는 것 같지 않은 상태로 두어 살쯤 더 먹은 누이 무릎에 죽은 듯 누워있는 네댓 살짜리 소년.
지상의 연옥이라 불렸던 소말리아 사태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보도되기 시작한 지난 92년 이후, 우리는 각종 보도매체를 통해 이 같은 모습들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굶주림과 질병, 전쟁에 지친 아사 직전의 모습들은 우리에겐 이미 오래 전에 익숙한 것이었다. 지난 80년대 중반 한발로 1백만 명이 숨진 에티오피아의 기아사태, 6·25 동란으로 잿더미만 남은 거리에 전쟁고아들로 들끓던 과거 우리의 모습을 통해서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아현상들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지구촌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국토 면적에서 아프리카 제일인 수단은 현재 7백20만 명 이상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으며, 남부와 북부간의 내전으로 전체 인구의 절반가량이 난민 행렬을 이루며 떠돌고 있다. 어림잡아 1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전쟁고아들은 거의가 5살에서 15살 사이의 어린이들. 이들의 목적지는 절망의 소년공화국, 저주받은 유치원 등으로 불리는 전쟁고아 집단 수용소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는 수용소를 구경하기도 전에 목숨을 잃는다.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수용소에 도착해 봐야 먹을 것과 쉴 곳이 없기는 마찬가지. 목격되는 것이라고는 같은 처지의 경쟁자들과 이곳에서 사망한 어린 아이들의 무덤뿐이다.
소말리아에는 다섯 살 이하의 어린이 4분의 1이 죽었고, 긴급 식량 원조가 없으면 나머지 아이들도 6개월 안에 숨질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한다. 10년 이상 가뭄이 계속되고 있는 에티오피아는 1백만 명 이상이 아사상태이고, 모잠비크 잠비아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10여 개국 2억2천여만 명이 이 같은 굶주림에 고통 받고 있다.
기아의 고통은 이곳뿐만 아니다.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 서아시아 나라들도 전체 인구의 절반 정도인 5억6천여만 명이 기아상태에 있고,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도 1억7천만 명이 빈곤에 허덕이며 최소한의 인간 생존 조건을 포기하면서 살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에는 전 인구의 4분의 1인 1억의 인구가 내전의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으며 동유럽에서는 약 7백만 명이 기아상태에 있다. 결국 지구상의 53억 인구 중 10억이 기아로 고통 받고 있고 20억이 영양실조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은 굶주리고, 세 명 중 한 명은 영양실조 상태인 것이다.
국제화를 부르짖으면서 ‘지구촌’ 운운하는 세상에 그야말로 납득하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첨단 과학 기술이 판을 치는 이 시대에 어떻게 이처럼 비인간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것일까. 바로 개인 집단 민족적 이기주의와 가진 바를 나누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지구상에는 인류의 4배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식량 자원이 있다는 것이 국제식량농업기구의 보고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이 가운데 절반가량을 가축의 사료로 사용하고 있으며 애완동물의 먹이로도 엄청난 양의 식량을 쓰고 있다. 유엔개발기구는 92년도 보고서에서 세계 인구 중 가장 잘 사는 약 10억의 인구가 전 세계 부의 82.7%를 소유하고 있고, 가장 못 사는 10억의 인구가 차지하는 부는 전체의 1.4%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다. 비극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92년 가을 한국 주교회의가 인류애 차원에서 해외 원조에 나설 것을 공식 선언한 것은 이런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동안 해외 원조는 간헐적으로 지속돼왔다. 그러나 주교회의의 이 같은 결정은 보다 체계적이고 활발한 해외원조사업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로부터 1년 남짓 기간 동안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위원장 박석희 주교)는 로마 국제 까리띠스(C‧I), TROCAIRE(아일랜드 가톨릭 원조기구), CAFOD(영국 가톨릭 원조기구), ACR(오스트리아 가톨릭 원조기구), APHD(아시아 인간개발협력후원회). ICMC(가톨릭 국제난민위원회) 등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해외원조 단체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이들을 통해 전 세계 20여 개국 40여개 사업에 대한 지원 활동을 벌여왔다. 총 원조 규모도 12억 원을 넘어서 명실 공히 ‘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로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일부에선 아직 국내에도 지원할 곳이 많은데 해외 원조에까지 나설 여유가 있느냐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원조활동의 본래 의미와 ‘가난한 이에 대한 우선 선택’이라는 복음의 요청에 따른다면 해외 원조는 이 시대 우리가 해야 할 과제”라는 것이 교회의 입장이다. 사회복지위원회 최재선 사무국장은 “진정한 나눔은 내게 부족한 가운데서도 더 어려운 이를 돕는 데 참뜻이 있다. 이제 우리는 굶어 죽는 일은 없지만 세계 도처에서 기아로 쓰러지는 이가 매년 수백만 명에 달한다”는 말로 해외 원조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회복지위원회는 그동안 식량이나 의약품을 공급하는 긴급 구호에 치중해왔으나 가난한 이들이 희망을 갖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가도록 하는 개발 사업에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지역도 아프리카뿐 아니라 만성적인 가난으로 고통 받고 있는 아시아와 남미까지 넓혀갈 방침이다.
가난한 이를 돕는 일은 어떠한 논리보다 단순한 나눔 정신이 커다란 기적을 행할 수 있다. 과거 한 사발의 보리죽과 한 바가지의 밀가루만으로도 삶의 희망을 잃지 않았던 우리가 이제 그러한 희망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자는 것이 사회복지주일의 참 의미일 것이다.
*해외 원조에 대한 문의=(02)279-9204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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