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량 면에서 비교가 안 되니 가격 경쟁은 애당초 생각해 볼 수도 없어요. 품질로 경쟁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고, 그러기 위해선 유기농업으로 질 좋고 안전한 쌀을 생산, 공급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가톨릭 농민회 유기농위원회 위원장 정선섭(프란치스코·48)씨. 우리 농업, 농민이 살아날 방법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이처럼 단호하다. 도시 소비자들에게는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자 농민들에게는 적정 수준의 생산비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유기 순환 농업이야말로 거대한 공룡처럼 닥쳐올 UR 파고를 이겨낼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86년부터 그가 유기농업으로 재배한 면적은 2만5천여 평. 이미 70년대부터 유기농업에 대한 관심을 키워왔지만 ‘한살림 공동체’의 태동과 더불어 유기농업을 본격화했다. 무농약으로 재배한 품질 좋은 쌀들은 전량 높은 값에 소비자들에게 공급됐다.
유기농 생산 농가 가운데 최다 면적을 자부해왔던 정씨는 그러나 작년 경우 경작지의 상당 부분을 저농약으로 전환해야 했다. 일손을 구할 길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취한 조처였지만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심적 갈등은 엄청났다. 유기농업에 필수적인 김매기는 수십 년 농사꾼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힘드는 일. “농민들 사이에서도 유기농업이 비효율적이고 정신 나간 일로 인식되는 데 문제가 있어요. 큰 맘 먹고 한 해 유기농업을 시도해보지만 이듬해엔 포기하는 수가 태반입니다. 유기농사라는 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점차적으로 실현되는 것이지 금세 뭔가 되는 게 아니거든요. 유기농업을 하는 데도 신앙과 같은 뿌리가 있어야 합니다”
정씨는 작년 1월 오이타현 효다현 등 일본의 유기농업 현장 방문 때 가져온 오리알을 부화시켜 기르고 있다. 오리의 물갈퀴를 김매기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부화한 지 15일쯤 되는 오리를 풀어 놓으면 1마리당 10평정도 김 매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이와 함께 정씨는 현재 밀과 볍씨를 동시에 뿌려 ‘모내기’과정을 생략하고, 밀 수확 후엔 물만 대면 벼가 자랄 수 있게 하는 ‘직파 재배’를 시도하고 있다.
“서산에 진행 중인 대규모 기업농도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한 방안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못 됩니다. 따라서 소규모 가족농업 단위의 유기농업으로 품질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한국 농업이 살아날 길입니다.”
영농 자금의 80% 이상을 정부에서 무상 지원해 주는 일본의 농업 정책이 부러웠다는 그는 무엇보다 유기농업 생산자들과 소비자들이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관계를 뛰어넘어 긴밀한 협조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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