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편지’로 유명한 조양희씨네 가족이 자신 있게 말하는 ‘우리집 자랑거리’는 도시락 속에 담긴 엄마의 사랑 편지가 아니라 바로 ‘저녁기도 모임’이다.
조씨는 물론 남편 박문규씨(46세·미카엘)와 큰 딸 진호(13세·젬마) 큰 아들 성진(13세·요한) 막내 다위(8세)까지도 모두 아무 망설임 없이 ‘저녁기도’를 제일의 자랑거리로 꼽는다.
매일 저녁 9시쯤 성모님 앞에 초를 밝혀두고 가족이 둘러앉아 시작하는 저녁기도가 바로 1천3백여 통이 넘는 ‘도시락 편지’를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기도를 통해 털어놓은 아이들의 고민과 고백과 잘잘못은 이튿날 언제나 도시락 편지 안에 엄마의 따뜻하고 사랑 어린 조언과 용서로 되돌아왔다.
조양희씨네 가족이 이렇게 저녁기도 모임을 시작한 건 큰 딸 진호가 첫 영성체를 하던 지난 90년이었다.
“각종 기도문을 외워야 하는 진호를 위해 엄마와 아빠만의 기도시간을 가족기도 시간으로 바꿨어요. 생활 속에서 매일매일 기도를 드리다 보면 일부러 기도문을 외워야 하는 수고를 않아도 될 것 같았지요. 연년생인 성진이도 함께 하겠다고 나서서 시작됐어요.”
가족들이 함께 드리는 저녁기도가 뭐 그리 어렵고 대단한 일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가족기도를 경험한 신자라면 누구나 가족기도 시간만 되면 찾아오는 수많은 유혹의 손길을 뿌리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조양희씨네도 마찬가지.
아이들은 재미있게 보고 있던 TV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고 밀린 숙제 때문에 기도할 틈조차 없다고 아우성을 친다. 때론 이유 없이 기도를 귀찮아하기도 한다.
‘그래서 기도시간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하는 방법을 궁리할 수밖에 없었어요. 하루 생활 중에서 착한 일을 한 것을 크게 발표하게 하고 잘못한 일을 고백하도록 기도할 내용을 정해 줬지요.’
저녁기도 모임은 매일 엄마인 조양희씨의 감사기도로 시작되고 있다.
“우선 온 가족이 이렇게 무사히 하루를 마치고 모일 수 있도록 해주신 데” 대한 엄마의 감사기도가 끝나게 되면 다위에서부터 성진, 진호까지 하루의 일과를 소상히 기도의 형식으로 얘기한다.
‘도시락 편지’에서 조양희씨가 아이들의 자질구레한 이야기까지도 소상히 알고 있고 거기에 대해서 아이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자세한 설명을 곁들일 수 있는 것도 바로 아이들의 기도를 통해서다.
“오늘 저는 빈 맥주병 나르기, 쓰레기 버리기, 물통 가져오기, 자전거 세 대 차례로 잠근 것 등의 착한 일을 했습니다. 예수님.”
착한 일을 고백하는 성진이의 기도가 끝나기 무섭게 “짝짝 짝짝짝 짜짜짝짝 짜짜짝 빼기짝, 가로치고 짝짝”하는 백 번 박수가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
착한 일을 고백하면 이렇게 기도 시간에 엄청난 박수가 터져 나오지만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엄마, 아빠는 물론 동생과 누나에게 엄한 꾸중을 들어야 한다.
“기도시간에 착한 일을 고백해야 하니까요. 착한 일을 하려고 자꾸 노력하게 돼요. 그리고 내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털어놓게 되니까 고민을 쉽게 해결할 수도 있고 또 엄마나 아빠의 생각이나 동생들의 기분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진호는 또 “가족기도 시간이 끝나면 가족회의가 있다”면서 “가족회의에는 가족여행의 행선지를 정하거나 앞으로 공연될 ‘도시락편지’의 연극에 대해서도 서로의 생각을 발표하는 등 민주주의를 공부하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어느 때는 가족기도에 참관하러 오신 신부님의 조언에 따라 기도 형식을 바꿔본 적도 있었다. 가족 중의 한 사람이 예수님이 되어 ‘기도’하는 식구들을 바라다보는 역을 맡는 것이다. “기도하는 우리 가족의 모습이 얼마나 시끄럽고 경건하지 못한지”를 반성하는 기회가 되긴 했지만 예수님으로 앉은 동생과 기도하는 누나, 형과의 장난스런 몸짓과 웃음은 오히려 기도 분위기를 더 엉망으로 만들어 다시 원래 방식대로 되돌아왔다.
오늘은 아빠가 저녁기도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다. 직장일로 바쁜 아빠는 종종 저녁기도에 빠질 때가 있지만 언제나 저녁기도만큼은 함께 하려고 늘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 기도의 주제는 진호에서 성진, 다위까지 한결같이 “아빠의 이른 귀가와 술 안마시고 들어오심을 기원한다”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학원에다 공부다 TV다 해서 요즘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바빠요. 그러다 보니 부모와 자녀가 함께 얘기할 시간이 없어집니다. 자녀들은 나름대로 불만을 갖게 되고 부모는 부모대로 아이들의 고충을 이해할 수 없게 되지요. 가족끼리 기도를 함께 하게 되면 가정 성화와 화목이 특별하게 이루어지는 게 아니란 걸 깨닫게 됩니다.”
도시락 편지에서 엿보이는 조양희씨네 가족의 평화와 화목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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