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레고리오(상인)에게
네가 보낸 편지를 읽다가
무심코 창 밖을 내다보니
옆집 앞마당에 감나무 한 그루
가지가 휘어지게 달린
홍시들의 가을축제 한창이구나
주님과 함께 사는 나의 삶 속에
진정한 기쁨이 훌륭한 기도이듯
일상의 거짓없는 사(思) 언(言) 행위(行爲)가
바로 우리들이 맺어야 할 열매란다.
예고없이 불어오는 싸늘한 바람을 타고
오색의 단풍잎들이 땅 위를 뒹굴며 떨어지는 모습에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사람들이지만
언젠가 나도 한 장의 낙엽처럼
순하게 내 영혼의 나무에서
육신이 이별을 고하는 날을 헤아리다
더욱 영글어야겠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옷깃이 여며지는구나
해 아래 모든 초목들이 열매를 맺는 이 가을
내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모든 이가 염원하는 알찬 열매를
눈부시게 맺어보자.
1983년 10월 22일 최남순 수녀
사랑하는 그레고리오(상인)에게
11월은 위령성월
기도와 선행으로
연옥 영혼을 도와주는
거룩한 달
우리의 죽음도 함께 생각해 보자
눈만 뜨면 정신없이
장난에 몰두하던
아득한 어린 시절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조무레기 친구들과 어울려
모래성을 쌓고 또 허물며
정신없이 장난에 취했을 때
어느덧 어둠이 나래를 펴면
할 수 없이
더 놀고 싶고
헤어지기 싫은 친구들
손에 익은 장난감들
정든 장소를
두 손 털고 일어나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흙투성이 옷차림으로
아빠 엄마가 기다리는
우리집으로 돌아가던
유년의 추억을 회상해 보라!
한 폭의 그림처럼 얼마나 아름다운지?
죽음이란
참삶의 정신없던
고달픈 순례자인 우리가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의
초대에 응답하며
나의 모든 것을 드리는
거룩한 봉헌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란다.
1983년 1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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