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신교 집사가 천주교 성지에 5천 호에 다다르는 벽화를 그리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 교회 사상 처음으로 성모 마리아 순례 성지로 선포된 남양 성지에 성녀 벨라뎃다의 생애를 그림으로 그린 이병규씨(47세)가 바로 화제의 주인공이다.
91년 4월부터 붓을 들기 시작해 이씨가 지금까지 3년간 온갖 정성을 다해 그린 성화의 크기는 무려 높이 1m50cm에 길이 11m에 이르는 초유의 대작이다.
성녀 벨라뎃다의 생애를 읽고 감명 받아 그린 이 대작에는 루르드 성모님이 18번이나 발현한 성녀 벨라뎃다의 일대기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들이 재구성돼 있다.
개신교 신자들이 종종 비난의 화살을 던지는 ‘성모 공경’에 남다른 이씨의 그림 봉헌은 이 대작뿐만 아니라 ‘앞으로 성모 제대가 바쳐질 성모동굴의 사방 벽면, 천정에 이를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성녀 벨라뎃다의 일대기는 바로 동굴벽화 중에서 오른쪽 벽면만을 채우는 대작업의 일부인 것이다.
“예수교 장로회 집사인 제가 성모님을 모신 성지에 이런 그림들을 그린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저희 교회 신도들은 왜 가톨릭교회에 가서 그런 일을 하느냐고 비난하고 또 가톨릭교회 신자들은 저를 의심스런 눈으로 보았습니다. 양쪽 어느 곳에서도 저의 순수한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것이 그림을 그리는 일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이씨가 가톨릭교회와 인연을 갖게 된 것은 초등학생인 그의 딸아이가 원인 모를 병으로 앓아눕자 모든 재산을 쏟아 붓고 빈털터리가 됐을 때였다.
서울 마천동 본당의 빈첸시오회 사람들이 그의 처지를 알고 적극적인 도움을 아끼지 않게 됐고 또 딸아이의 건강도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던 중 빈첸시오회의 한 회원이 미술학원을 운영하고 있던 그에게 “남양 성지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도움을 줄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남양 성지를 한 번 방문한 이씨는 남양본당 주임인 이상각 신부에게 남양 성지의 개발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가톨릭교회에 관련된 몇 가지 서적을 받았지만 도통 관심이 쏠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우연한 신비를 경험하게 됐죠. 가톨릭 신자인 아내에게 말했더니 성모님이 나를 부르고 계시다는 것이었어요. 그 뒤로 신부님께서 주신 책을 읽게 되었고 가톨릭과 우리 개신교 신자들이 갖지 않았던 성모 신심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한 이씨는 1년간 벽화를 구상하고 드디어 91년 붓을 들었다.
매주 목, 금, 토, 일요일은 남양 성지까지 달려와 작업에 매달렸다.
신자들이 그림을 보고 쉽게 느끼고 감상할 수 있도록 사실적인 면을 강조한 이씨는 역사적 고증을 위해 무려 1백80여권에 달하는 가톨릭 서적들을 읽었다. “자료 수집도 커다란 어려움 중의 하나”였다. 한국의 성지란 성지는 어디든지 달려갔다.
또한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재료를 구입하고 귀중한 시간들을 아낌없이 성지에 바치는 그의 진실은 점차 사람들에게 전해져 물질적인 도움으로 돌아오곤 했다.
“남양 성지가 어머님의 품 같이 느껴집니다. 제가 살면 얼마큼 살겠습니까? 그러나 살아생전 이런 곳에 대작을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흐뭇할 따름이지요”
순례객들의 다양한 문화적 ‘거리’를 제공할 수 있게 된 것도 커다란 기쁨이라는 이씨의 대작업은 3년 후에야 윤곽이 드러나게 된다.
누가 의무를 지어주지도 않았고 포상도 없는 일을 자신의 굳은 신념으로 묵묵히 수행해 나가고 있는 이씨의 신앙 저변에는 ‘진정한 일치’로 인해 생겨난 사랑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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